‘뉴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 ‘넥스트노멀’ ‘세미노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을 설명하려는 용어들이 쏟아지고 있다. ‘의학적 사건’으로 시작한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의료문제를 넘어 경제문제, 정치문제, 사회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총선을 끝낸 우리 사회 역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삶과 사회의 변화, 국가의 역할, 재편될 국제질서를 고민해야 한다.
김호기(60)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에게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에 대해 의견을 구했다. 김 교수는 정치·사회·경제를 포괄하는 폭넓은 식견으로 미래의제를 다뤄왔다. 다양한 글쓰기를 통해 대중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편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을 비롯해 문재인정부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으로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비전을 주도적으로 만든 참여형 지식인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미래의 역사를 현재의 역사로 당겨왔다”며 거대한 시대적 흐름으로서의 ‘코로나 모멘텀’에 대해 말했다.
-코로나19 이후의 사회는 이전과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사회학자로서 포스트 코로나 사회를 어떻게 규정하는가.
“‘이중적 뉴노멀 시대’ 또는 ‘제2의 뉴노멀 사회’라고 이름 붙이겠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의 경제적 불확실성이 뉴노멀이었다면 전염병의 세계화가 낳은 위험의 불확실성이 또 다른 뉴노멀이 됐다. 지구화된 전염병이 비정상이 아니라 마치 정상인 것처럼 우리에게 다가올 거라는 의미다.”
-위험사회가 정보사회의 진전과 결합해 ‘공포사회’로 진화하고 있다는 글을 쓰셨다.
“‘위험사회’는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이론으로 잘 알려져 있다(현재 인류가 마주한 위험은 과학기술과 경제발전이 낳은 것으로, 위험이 사회의 중심적 현상이 되는 사회를 위험사회라 한다). ‘공포사회’란 실제의 공포도 있지만 커뮤니케이션 강화로 모든 뉴스가 즉시성을 가지고 지구화되는 것에서 비롯된다. 어느 나라에서 몇천명이 사망했다더라, 그러면 공포스럽다. 가짜뉴스까지 범람하면서 전염병에 대한 불안이 단숨에 과도한 공포로 진화하게 되는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이중적 뉴노멀에 대응하는 것이 될 것이다. 첫째, 경제의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최고의 시대정신은 일자리 창출이다. 두 번째는 생명을 중시하는 안전이라고 본다. 일자리와 안전이 지구적 차원의 포스트 코로나 시대정신이 될 것이다. 한국 사회의 경우는 여기에 공정이 더해진다고 생각한다. 특권과 차별을 해소할 공정한 시스템을 구축하라는 젊은 세대의 강력한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2022년 대선도 새로운 시대정신에 어떤 해법을 내세울 것인가를 놓고 치러지지 않을까 싶다.”
-국가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질까.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국가들의 전략을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스웨덴이 추진했던 집단면역 전략, 중국의 봉쇄 전략, 한국식 확진자 동선공개와 사회적 거리두기다. 이 전략을 결정한 건 국가다. 이름을 붙여보자면 ‘국가의 귀환’이 이뤄진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이 고장났다는 게 드러난 후 많은 사람들이 국가가 적절하게 개입하게 될 거라고 예상했지만 국가의 복권은 이뤄지지 못했다. 그런데 예기찮게 코로나19가 국가를 귀환시켰다.”
-바이러스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고 하지만, 코로나19가 새로운 계급 불평등 ‘코로나 디바이드(격차)’와 ‘코로나 카스트’를 낳았다.
“울리히 벡이 ‘안전이라는 가치가 평등이라는 가치를 몰아낸다’고 말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평등보다 생명이 더 중요하다는 거다. 오래전에 제가 ‘더위는 평등하지 않다’는 칼럼을 썼다. 에어컨이 있는 사람과 선풍기도 없는 사람이 있지 않나. 마찬가지다. 코로나19도 당장 마스크를 쓰고 일해야 하는 사람과 집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 간 위험의 불평등이 존재한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코로나 팬데믹이 세계 질서를 영원히 바꿔 놓을 것’이라고 했다. 반(反)세계화의 시대, 각자도생의 국수주의 시대가 열렸다는 전망이 나온다.
“세계화의 약화를 보여주는 것이 포퓰리즘의 득세다. 보수적 포퓰리즘의 특징 중 하나가 외국인 노동자와 난민에 대한 차별이다. 세계화는 경제·문화뿐 아니라 인구이동의 세계화이기도 했는데, 포퓰리즘이 이것을 막아 세계화가 약화됐다. 여기에 더해 전염병의 세계화가 경제의 세계화를 약화시키게 됐다. 역설적이게도 세계화가 세계화에 브레이크를 건 것이다. 포퓰리즘적 경향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훨씬 더 강화될 거라고 본다. 앞으로 자원 확보를 위한 민족주의가 강하게 발휘될 수도 있다. 일각에선 식량주권 얘기도 나온다. 지구적으로 확산되는 자원의 민족주의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WHO나 유엔이 코로나19 확산 과정에서 무력함을 드러냈다. 코로나19를 극복하려면 글로벌 연대가 필수일 텐데.
“나라들끼리 마스크를 탈취하는 걸 보니 세계질서가 국제연맹 이전의 제국주의 시대로 되돌아간 듯한 인상을 받았다. 지금은 각자 자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급박하지만 파고가 지나간 다음에는 위험의 세계화에 체계적으로 맞설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글로벌 거버넌스가 모색돼야 한다. 대다수 선진국은 전염병 대처보다 테러 방지에 더 많은 투자를 해왔다. 이제는 의학과 생물학을 위시한 과학에 적극적인 재정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본다.”
-프랑스 언론에서 우리나라의 방역 시스템에 대해 사생활 침해, 감시와 밀고의 나라라고 평하는 글을 실어 시끄러웠다.
“생명과 안전이라는 가치 앞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다. 개인의 사생활 보호와 자유를 존중할 것인가, 아니면 협력과 공동체 보호를 택할 것인가. 우리를 감시와 밀고의 나라라고 하는 것에 반론을 제기하자면, 감시와 협력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감시의 나라인 동시에 협력의 나라인 것이고, 프랑스가 말하는 개인주의의 또 다른 측면이 이기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그 나라 국민의 공동 결정이지, 어떤 것이 낫다는 우위의 판단은 내리기 어렵다.”
-코로나19 앞에 무너진 서구 선진국을 언급하면서 동양의 약진은 물론 한국이 리딩 선진국이 될 거라는 전망도 있다.
“저는 약간 유보적이다. 사회운영체제로 정상시국에서는 자유주의가, 비상시국에서는 국가주의가 더 효율적이었다는 역사적 교훈이 있다. 조심스럽게 말씀드리자면 비상시국에서 국가주의가 유효하다는 것을 이번에 입증해 보였지만 정상시국에서도 이게 유효할지에 대해서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은 어떻게 될까.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팍스 시니카’ 시대를 열 수 있을까.
“팍스 시니카의 가능성을 높이는 가장 막강한 요인은 역시 인구라는 자원이다. 그러나 그 외에도 몇 가지 조건들이 충족돼야 한다. 우선은 여전히 존재하는 미국과 중국의 기술격차 문제가 있고, 두 번째는 중국의 정치체제 문제다. 국가가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라는 ‘연옥’을 통과해야만 한다. 민주주의를 할 때 경제활동을 포함해 그 사회의 활력이 훨씬 커지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팍스 아메리카나’ ‘팍스 브리태니카’, 저 멀리 ‘팍스 로마나’까지 핵심적 구성요소는 문화적 헤게모니였다. 과연 중국이 이런 문화적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을까. 중국도 어떤 형태로든 결국 민주주의를 도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뿌리내려야 문화적 헤게모니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14세기의 페스트는 중세를 무너뜨리고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했다. 전염병이 역사적 전환점을 만든 셈인데, 코로나도 그런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을까.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의도하지 않은 세 가지 교훈을 안겨줬다. 하나는 여전히 믿어야 할 것은 과학과 이성이라는 것. 또 하나는 개인과 개인, 개인과 공동체 간의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일깨워줬다. 마지막은 문명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다. 자연 파괴, 대량 소비, 기후 위기, 목적만을 향해 달려가는 빠른 삶, 이제까지 현대문명이라고 칭했던 것에 대한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코로나19 이후에 우리가 조금 더 다른 사람들과 협력적인 삶을 추구하게 된다면, 우리가 과거와는 달리 느린 삶을 살려고 한다면, 그리고 기후위기에 대한 신문기사들을 꼼꼼하게 읽는다면 그것은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준 긍정적인 결과들일 것이다.”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