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 위기인데… ‘관세 납부 유예’ 외엔 해줄게 없는 정부

입력 2020-04-22 04:05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급락을 거듭한 원유 가격이 급기야 ‘마이너스(-)’ 가격대까지 곤두박질치면서 정유 업계의 타격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게다가 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정부가 이들을 도울 수단도 마땅찮아 코로나발 정유업계 위기는 장기화할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2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정유사들은 유가 폭락에 따라 대규모 적자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4대 정유사의 1분기 영업 적자가 3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3월 초만 해도 배럴당 50달러 선을 유지했던 중동산 두바이유는 지난 20일 배럴당 20.78달러로 추락한 상태다. 지난해 1분기 331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던 SK이노베이션은 올해 1분기 1조80억원의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통상 정유사들은 원유를 국내로 들여와 가공한 뒤 판매하는데 한 달 이상의 시차가 걸린다. 때문에 원유 가격이 단기간에 급락하는 국면에서는 과거에 상대적으로 비싸게 산 원유를 가공해 낮아진 유가 기준에 맞춰 팔아야 해 손실이 쌓인다. 코로나19로 인한 이동제한으로 휘발유, 항공유 등 소비도 줄다 보니 매출 감소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전 세계적으로 여전히 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지다 보니 2분기 전망 역시 그리 밝지 않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1분기보다 소폭 줄어들겠지만 2분기 적자도 거의 확실하다”며 “3분기 흑자 전환조차도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12일 OPEC+(석유수출국기구와 비회원 산유국 협의체)가 원유 생산량을 하루 970만 배럴 감산하기로 했지만, 이 역시 원유 수요 감소 폭의 40~50%에 불과해 효과가 미미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부가 정유업계에 긴급 유동성 지원 외에 원유 수입 관세인하 등 추가 지원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미 정부는 지난달부터 국내 정유사들에 원유 수입가의 3%인 수입 관세를 5월까지 납부 유예를 해주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수입 관세 납부 유예 이상의 조치를 취하기는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업계에서 원유 수입 시 일정 물량에 대해 한시적으로 최대 40%까지 세율을 낮추는 할당관세 적용을 건의했지만, 정부는 관련 법에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난색을 보이고 있다.

관세법 71조를 보면 할당관세 적용 대상은 ‘원활한 물자수급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특정 물품의 수입을 촉진할 필요가 있거나, 수입 가격이 급등해 이를 원재료로 하는 제품의 국내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 필요한 경우’로만 제한하고 있다. 가격 급등이 아닌 마이너스 유가와 같은 수요 감소 상황에서는 할당관세 적용을 할 근거가 없는 것이다. 법을 개정해야 해결될 문제다.

한편 정유사들은 22일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주재로 열리는 정유업계 간담회에서 정부의 추가 지원을 호소할 예정이다.




세종=이종선 기자, 권민지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