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도 즐기는 ‘배리어 프리 온라인 공연’, 넘어야 할 벽 많다

입력 2020-04-25 04:05
‘오셀로와 이아고’ 온라인 공연 중 한 장면. 국내 최초 배리어 프리 생중계 공연으로, 화면 하단에 수어 통역을 제공하고 있다. 생중계 화면캡처

문턱 높았던 문화예술이 안방 1열에서 재현되고 있다. 향유 방식의 변화는 장애계에 큰 기회다. 공연을 온전히 느낄 수 없었던 장애인을 위해 배리어 프리(Barrier-Free) 방식을 온라인에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배리어 프리는 차별 없이 즐길 수 있도록 장벽을 없앤다는 의미로, 문화예술을 즐길 권리를 모두에게 주려는 시도다.

“오셀로를 잡으려는 듯 가까이 몇 걸음 다가가다 쓰러진다. 데스데모나의 손이 바닥에 떨어지자 오셀로가 고개를 돌려 데스데모나를 본다. (중략) 오셀로는 비척비척 걸어서 데스데모나에게 다가간다. 오셀로가 부채를 치켜들자 데스데모나가 픽 맥없이 쓰러진다”

여느 공연과는 달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공연이 취소된 ‘오셀로와 이아고’가 온라인으로 생중계되던 지난 3일, 극 중간중간 이런 해설이 나왔다. 하단에는 수어 화면이 자리했다. 국내 최초 배리어 프리 생중계 공연이었다.

공연장이 잇따라 문을 닫으면서 얼어붙은 문화예술계는 온라인 공연에 시선을 돌렸다. 이번 계기로 문화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나온다. 특히 이걸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이고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방법은 배리어 프리다. 서울 남산예술센터는 ‘장벽 없는 극장’을 실천하면서 장애인을 위한 ‘온라인용 배리어프리 영상 제작·배포’ 사업을 추진 중이다. ‘휴먼푸가’ ‘아카시아와, 아카시아를 삼키는 것’ 등 총 4개의 작품이 공연을 마친 후 서울문화재단 유튜브 채널과 남산예술센터 홈페이지에 무료 공개된다. 남산예술센터 관계자는 “모든 관객의 문화 향유를 보장하기 위한 사업”이라며 “장벽 없는 극장은 코로나19 이후 중·장기적인 대책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환상적인 무대, 섬세한 표정을 볼 수 없거나 아름다운 선율을 들을 수 없는 이들에게 배리어 프리는 필수다. 정아영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 대표는 “플랫폼 발달과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이 만나 온라인 공연이 활성화됐다”며 “제약 없이 공연을 접할 수 있어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배리어 프리 도입은 모두에게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프라인 공연장은 지난해부터 배리어 프리를 본격 도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찌 됐든 공연을 보려면 공연장으로 가야 했는데 열악했고 협소했다. 대학로 공연장 중 장애인이 도움을 받지 않고 관람할 수 있는 곳은 10% 수준에 불과하다.

배리어 프리를 온라인 공연으로 들여온다면 접근성 문제 등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장애계에서는 문화예술 향유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정 대표는 “배리어 프리 기획 단계부터 다양한 조건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 좋겠다”며 “장애인을 수동적 문화 향유자에서 문화 주체자로 인식하고 제작된 공연에 ‘장애인을 위한’ 추가 서비스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우리의 존재를 염두에 뒀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해외의 경우 거의 모든 오프라인 공연장에 배리어 프리가 도입돼 있다. 소품을 만져보는 ‘터치 투어’는 보편적이고, 영국 국립극장에는 ‘스마트 안경’이 비치돼 있어 어느 좌석에서든 자막을 볼 수 있다. 공연이 온라인으로 들어오면서 장애계는 더 환영하고 있다. 빛에 민감한 한 간질 환자는 “오프라인 공연이 취소되니 오히려 장애인에게는 공연을 관람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됐다”고 전했다.

배리어 프리 활성화를 위한 과제도 적지 않다. 미국의 비영리단체 ‘D-PAN’은 최근 가스 브룩스의 콘서트 영상에 수어를 넣어 내보낼 계획이었다. 통역사 갤러웨이 갈리고는 3일간 60곡을 수어로 바꿔 외웠다. 하지만 업로드되자마자 저작권 위반을 이유로 차단됐다. 갈리고는 “배리어 프리 온라인 공연에 제약이 많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많다”고 말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