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제외하고 28개 지역구만 차지한 총선 완패는 자업자득
고정 지지층 마케팅 치중하다 중도층 고객 다 놓친 때문
사생결단으로 개혁하고 외연 넓히지 못하면 기회 없어
21대 총선 결과 미래통합당이 영남당의 지위로 추락할 처지에 놓였다. 유권자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영남의 자민련’이 됐을 수도 있다. 통합당은 영남권 의석 65개 가운데 56개를 차지했다. 대구는 12석 중 11석을, 경북은 13석 모두를 석권했다. 반면 수도권에서는 121석 중 16석만 선택받았고 영남을 제외한 지역구 188곳에서 불과 28곳을 얻었다.
이런 선거 결과가 나온 것은 자업자득이다. 코로나19 같은 정치 외적 변수도 있었지만, 전통적 지지층에 지나치게 기댔고 중도층 설득 노력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선거 이전부터 민심 이반의 신호가 끊임없이 나왔고,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반사이익을 챙길 능력이 안 되는 제1야당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리모델링이 아니라 재건축 수준의 정당 개혁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선거 직전 유승민 의원의 바른정당계와 합쳤지만 눈에 보이는 혁신은 없었다. 전통 지지층에 예민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관련한 문제에서 탄핵의 강을 끝내 건너지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를 유지했다.
공천 과정에서도 역사 뒤집기식 막된 주장으로 자기 지지층만 관리하는 정치인들을 솎아내지 못했다. 세월호 사건의 본령과는 무관한 지엽말단의 막말에 대한 대응은 오락가락해 많은 유권자의 분노를 자초했다. 국정 심판론은 지지층의 관심사였을지 모르지만, 중도층엔 소득주도성장 정책이나 조국 사태에 대한 실망감이 코로나19 사태로 희석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총선 공약은 케케묵어 새로운 지지층을 끌어들이기에 역부족이었다. 지지층 마케팅에 안주하다 더 큰 고객을 놓친 셈이다.
통합당은 영남으로 대표되는 고정 지지층만 바라보는 당 운영이나 의회 전략에 매몰되면 안 된다. 선거전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사생결단의 자세로 중도층에 다가가야 하며, 구애에 실패하더라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보수의 이념과 강령을 가다듬어야 하고, 새롭고 유능한 인물들을 삼고초려해 당의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국민이 고개를 끄덕일 국가 비전을 내놓고 동행을 권유해야 한다. 여당의 국정운영에 협조하건 혹은 반기를 들건 합당한 명분과 논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규칙을 준수하고 도덕성과 품위를 지켜야 함은 물론이다. 지지층을 바라보더라도 상식과 합리성이라는 최소한의 선을 지켜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도 대구에서는 17.8%에서 39.3%까지 여당 후보를 지지했다. 경북에서도 14.7~35.7%의 표를 줬다. 친박과 태극기 부대를 내세운 친박신당과 우리공화당은 정당투표에서 1% 안팎을 얻는 데 그쳤다. 그런데도 “대구는 독립해서 일본으로 가시는 게 어떨지”라는 황당한 비아냥을 듣게 한 것은 통합당의 책임이 크다. 이들 지역에 골수 이미지를 고착화한 건 이들이 지지한 보수 정당이 제대로 방향 설정을 하지 못한 때문이다.
상황이 참혹한데도 통합당은 총선 후 진로를 놓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싹수가 노랗다. 참패를 했고 4연패를 당했으면 대성통곡을 하고 처절하게 반성해도 유권자들이 받아줄까 말까다. 당선자들도 기쁨에 앞서 위기감을 먼저 느껴야 한다. 선거 패배의 원인을 놓고 엄중하게 토론한 다음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화장 고치기로는 안 되고 기존 정당을 해체하고 그 더미 위에서 새로운 변화를 시작하는 수준이어야 한다. 험난하더라도 그 길을 가야 한다. 우리 정치의 발전을 위한 첩경이기도 하다. 이번 선거에서 득표율 차이가 9%포인트도 안 된다는 인식은 위험한 발상이다.
그런데 통합당은 비상대책위와 조기 전당대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외부인사 영입을 통한 보수 재건론도 반발에 부딪혔다. 당권과 2022년 대권 사이 이해관계가 반영된 자리다툼 인상을 준다. 비례대표 위성정당을 교섭단체로 만드는 꼼수를 또다시 자행하려 한다.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주기로 공약해 놓고 딴말을 하고 있다. 황당한 총선 불복 주장도 외곽에서 제기하고 있다.
제1야당이 떨쳐내야 할 곳이 바로 이런 지점이다. 고정 지지에 안주하는 태도를 버리고 광야로 나서서 진짜배기 보수, 국민이 사랑할 수 있는 보수를 모색해야 한다. 보수 지지층이 점점 엷어지고 새로운 세대가 공간을 채우고 있다. 과거를 훌훌 털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면 보수에게는 기회가 없을 수 있다.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