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힘 사용법

입력 2020-04-22 04:01

당신이 어떤 상상을 하든 그보다 백배쯤은 더 좋은 자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꽤 오래전에 정치권과 가까운 어떤 분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나는 국회의원이 뭐라고 저렇게 하고 싶어 난리들일까, 하고 한심하다는 듯 투덜거렸고, 그분은 그런 나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며 저 말을 했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아직도 상상이 잘 되지 않지만, 그러나 대단한 힘을 가진 것은 맞는 모양이라고 짐작할 만한 소식이 투표가 끝나자마자 들려온다. 한 국회의원 당선자는 재난지원금 문제에 대해 정부안을 지지하라고 의견을 낸 한 지역 주민에게 당신이 대통령 하시죠, 라고 비아냥거리고, 그 말을 지적한 다른 주민에게는 쌍욕을 했다고 한다. 선거 기간 중에 표를 달라고 마음에도 없는 인사를 하고 다녔더니 국회의원 당선자인 자기를 몰라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다니, 얼마나 언짢았겠는가. 욕이 나올 수밖에.

당선되자마자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도록 갚아주겠다고 협박에 가까운 말을 한 사람도 있다. 뭐가 바뀌었다는 건지 모르겠거니와 바뀌었으니 갚아주겠다는, 사적 복수심으로 들릴 수 있는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그 자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백배쯤 좋은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상상하는 것보다 백배쯤 힘을 가진 건 맞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말들을 함부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힘을 가진 자는 힘을 쓰려고 한다. 그것이 힘의 속성이다. 대부분의 힘은 외부를 향한다. 그것이 힘의 방향이다. 외부(의 사람과 일)를 자신의 영향권 아래 두려고 한다. 힘을 가지게 되어 쓰는 사람도 있지만 쓰기 위해 가지려고 하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쓰기 위해 가지려고 하는 사람이 정말로 힘을 가졌을 때가 가장 위험하다. 그 힘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기야 어디에 쓰겠다고 공언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그래서 힘은 힘을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가져야 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힘을 가지려는 욕망이 별로 없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인류는 힘이 잘못 사용된 불행한 기록으로 얼룩져 있다.

외부의 사람과 일에 영향을 끼치는 방식으로 자신의 힘을 사용하는 사람은, 힘의 속성에 저항하지 않고 복종하고 있는 셈이므로 그것은 정말로 힘 있는 사람의 태도라고 할 수 없다. 외부에 대한 그의 무리한 힘의 행사는 그가 힘의 속성에 지배받고 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증거한다. 폭력적인 사람이 사실은 유약하고 비겁한 사람이라는 건 새로운 사실도 아니다.

정말로 힘 있는 사람은 힘의 속성을 억제할 줄 아는 사람, 힘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다. 뻗어나가려는 힘의 방향을 외부가 아니라 자신에게로 돌릴 수 있는 사람이다. 발산이 아니라 억누르는 것이 진짜 힘이다. 발산을 누가 못 하겠는가. 아주 작은 힘만 있어도 누구나 발산한다. 어느 계파에 소속하기만 하면 쉬운 일이다. 우리는 그런 힘들을 보아왔고 아직 보고 있다. 당선되자마자 모욕하고 협박부터 한 이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작은 힘일수록 발산밖에 못 한다. 힘을 억누르기 위해서는 아주 큰 힘이 필요하다. 힘(의 속성)을 이길 힘이 필요하다. 나는 그런 큰 힘을 가진 사람을 알고 있다. 예수는 돌을 떡으로 만들 능력이 있었지만 그러면 안 되기 때문에 그 힘을 사용하지 않았고, 높은 데서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을 줄 알았지만 그 능력을 사용하려는 유혹을 이겨냈다. 그러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나는 국회의원들이 가지고 있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그 힘이 그들의 것이 아니며, 그 힘을 그들에게 부여한 사람들을 모욕하거나 겁 주는 방법으로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도 하면 안 되는 데 자기가 가진 힘을 쓰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승우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