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링크(LINK)’는 최근 영국 내 현금 사용이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고 밝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탓이다. 지폐를 사용하다가 전염병에 감염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것이다. 인도나 러시아, 베트남 등에서는 중앙은행 차원에서 현금 사용을 억제하고 있다.
은행과 보험, 증권 등 금융업계 전반에 걸쳐 패러다임의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와 더불어 ‘제로금리’ 시대로까지 접어든 상황에서 금융권은 위험(리스크) 관리뿐만 아니라 코로나 피해 기업 지원, 나아가 ‘포스트 코로나(코로나 이후)’ 생존 고민까지 나서야 한다.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는 여정은 금융 소비자들의 경제생활과도 직결된다. 금리 인하 폭이나 대출 가능 여부, 금융생활 수단의 변화(대면→비대면 등) 등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19일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제로금리 시대와 함께 코로나19를 맞닥뜨린 은행권은 부실자산 증가, 펀드·보험상품 판매 위축 등으로 수익성 악화 우려를 안고 있다. 보험권은 신규 판매실적 위축, 자산운용 수익률 하락, 해약 증가 등의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충격이 장기화되면 금융권 전반에 걸쳐 수익성과 건전성이 큰 폭으로 떨어질 수 있다.
금융권에서는 은행을 중심으로 비대면 금융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지난달 말 기업 대출에 빅데이터 기술을 적용한 ‘기업여신 자동심사 지원시스템(Bics)’을 선보였다. 심사의 효율성과 정확성을 한층 높였다. 신한은행의 경우 최근 ‘금리인하요구권 자동 처리 시스템’을 내놨다. 고객이 온라인으로 금리인하요구를 신청한 뒤 심사, 실행 등 전체 여신 과정을 자동 처리한다.
이밖에 IBK기업은행은 이르면 올 상반기에 ‘비대면 기업대출 실행 프로세스’를 도입한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고객이 영업점을 방문해 상담하는 번거로움이 사라지고, 대출 실행부터 대출금 수령까지 비대면으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면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보험사들은 인공지능(AI) 활용에 적극 나서는 분위기다. 한화생명은 AI가 보험금 지급 여부를 실시간으로 심사하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DB손해보험은 24시간 보험 상담 및 계약 서비스를 제공하는 ‘AI 로보텔러’를 선보일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혁신 과제와 함께 제로금리 여파에 따른 금융권의 대응을 강조하고 있다. 이대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등에 금융권의 선제적 금융 지원이 확대되고 있다”면서 “이에 따른 은행 면책제도의 실효성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또 외환 건전성이나 유동성 규제의 완화방안이 지속적으로 강구돼야 한다”고 말했다. 보험권의 경우 보험료 납입상환 유예와 감염병 특화보험 개발 필요성이 제시됐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