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피어스가 오기 전부터 한국엔 이미 월드비전 설립 토대가 마련돼 있었다. 피어스는 한경직 목사(1902~2000)가 이미 구축한 인도주의 네트워크에 연결돼 활동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자 월드비전 설립 신화에서 한 목사의 비중은 줄어들었다.”
한국 사회와 교회사에 큰 획을 그은 고 한경직 목사를 재조명하는 기사가 미국 크리스채너티투데이(CT) 4월호에 실렸다.
미국의 대표적 기독교잡지 CT는 ‘월드비전의 잊혀진 설립자’란 제목의 표지 기사를 지난 16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사진). 이 기사의 부제는 ‘한국인 목사가 세계 최대 구호기구 중 한 곳의 탄생을 도왔다. 그는 왜 역사에서 사라졌는가’다. 데이비드 스와츠 미국 애즈베리대 역사학과 부교수가 기고했다. 기사엔 한 목사의 가정환경부터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된 배경과 미국 프린스턴대 유학 생활, 영락교회 설립 및 6·25전쟁 전후 인도주의 활동이 자세히 소개됐다. 기사는 특히 한 목사가 한국 시민사회와 종교계의 주요 인물로 활약했으며, 영어에 능통해 세계 각지의 기독교계 및 국제구호 관계자와 교류한 것에 주목했다. 1951년 유엔 한국대표로 활동했던 게 대표적이다.
한 목사는 월드비전 설립자 밥 피어스 목사와 6·25전쟁이 발발하기 몇주 전 만났다. 한 목사가 피어스 목사를 영락교회에 강연자로 초청한 것을 계기로 두 사람은 한국의 전후 복구를 위해 협력하게 된다. 피어스 목사는 모금에 앞장섰고, 한 목사는 구호 현장을 맡았다. 두 사람의 협력으로 발전한 월드비전은 현재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국제구호기구로 성장했다.
국제월드비전과 한국월드비전 설립에 관한 한 목사의 명실상부한 기여에도 그의 업적은 점차 잊혀졌다. 1983년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좋은 통역자 한경직 박사가 피어스 목사의 설교를 (한국인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통역했다”고 언급했다.
기사는 “서구 복음주의권의 ‘승리주의적 서술’에 의해 한경직의 유산이 압도당했다”며 “그 결과 이 이야기는 강하고 자애로운 미국과, 가난하고 절망적인 한국을 강조하는 이야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전 세계 선교 역사에서 잊혀진 영웅은 없어야 한다고 전했다. “이제는 선교단체와 구호단체가 자신들의 한경직 목사를 찾아 과거를 청산할 때다. 세계에 기독 시설을 세웠지만 역사 속에서 사라진 이들은 누구인가?”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