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애플의 변심

입력 2020-04-20 04:04

애플이 5년 만에 새롭게 선보인 2세대 아이폰SE(이하 아이폰SE)는 하나의 신제품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동안 가격만큼은 콧대가 하늘을 찔렀던 애플이 시장 변화를 기민하게 인지하고 전략을 선회했다는 게 핵심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제 지형 변화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근본적이라는 걸 직감한 것으로 보인다.

팀 쿡 체제 이후 애플은 아이폰 가격을 꾸준히 올렸다. 지난해 출시한 아이폰11 프로 맥스의 경우 가장 비싼 제품이 200만원을 넘는다. 애플 팬보이들조차 해마다 껑충 뛰는 아이폰 가격에 불만을 내비치고 있다. 그래도 아이폰 판매는 견고했다. 아이폰은 대체재가 없는 데다 비싼 가격이 오히려 ‘명품 마케팅’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애플이 아이폰SE에서는 ‘가성비’를 앞세우고 있다. 아이폰SE는 아이폰11과 같은 A13 바이오닉 칩셋을 탑재했다. 아이폰SE의 기본적인 성능이 아이폰11 시리즈와 동일하다는 의미다. 자동차로 치면 동급 엔진을 쓰고 옵션만 차이가 있는 자동차인 셈이다. 아이폰SE의 가격은 399달러부터다. 한국 가격은 55만원에서 시작된다. 아이폰11(99만원)의 절반 수준, 아이폰11 프로(139만원)의 40%가량이다.

애플의 전략 변화는 코로나19 이후 스마트폰 시장 수요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으로 해석된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시장뿐만 아니라 중국 인도 등 신흥시장 모두 한동안 얼어붙을 것이 분명하다. 중국 업체가 장악하고 있는 중저가 시장을 빼앗아 오려면 그 이상의 가성비를 갖춰야 한다고 판단, 아이폰SE에 적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시장분석 업체 크리에이티브 스트래티지 캐롤리나 밀라네시 분석가는 “코로나19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아이폰SE의 등장이 반가울 것”이라며 “내년까지는 이런 종류의 제품이 팔리기 가장 좋은 시점”이라고 말했다.

애플의 변심으로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스마트폰 업체들의 전략 변화도 불가피해졌다. 그동안 중저가 혹은 보급형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스마트폰은 적당한 성능에 적당한 가격을 붙여서 내놓는 제품을 의미했다. 하지만 아이폰SE의 등장으로 이런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다.

가뜩이나 소비자들은 스마트폰 신제품에 관심이 별로 없다. 해마다 더 빠른 칩셋, 더 좋은 카메라 등을 갖춘 신제품이 나오지만 한계효용은 0에 가깝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성적으로 해마다 신제품을 내놓는 전략은 이제 무의미하다. 삼성전자 갤럭시S20은 전작인 S10 판매량의 80%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는 스마트폰 사업에서 20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이제 국내 시장에서는 프리미엄 제품은 내놓지 않기로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스마트폰은 이제 냉장고와 같다. 꼭 필요한 것이지만 제빙 기능이 추가됐다고 새 냉장고를 사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스마트폰 시장이 장기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그동안 스마트폰이 보급되지 않았던 시장에서 오히려 수요가 늘어날 수도 있다. 코로나19 이후 ‘언택트’(비대면) 관련 산업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도구로서 스마트폰의 쓰임새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스마트폰으로 안부를 주고받고, 일상을 전달하고, 물건을 사고 하는 행동이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지금까지 생각지 않았던 새로운 활용도가 생길 수도 있다. 코로나19로 경제 상황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전략을 세우지 못하면 순식간에 도태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김준엽 온라인뉴스부 차장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