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겼지만 묵직한 ‘UV 10년’

입력 2020-04-20 04:06
2010년 4월 발매된 UV의 데뷔 음반 재킷. 유세윤(왼쪽)과 뮤지로 구성된 이 팀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을 선보이며 실력파 뮤지션으로도 자리매김했다. 국민일보DB

UV(유브이)는 출범 당시 대다수에게 그저 웃긴 그룹으로 여겨졌다. 개그맨 유세윤이 한 축을 담당해서 재미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매번 착용하는 엉성한 레게 머리 가발도 코믹함에 한몫했다. 아무 의미 없이 지었다는 그룹 이름 또한 유브이를 가볍게 느껴지도록 하는 요인 중 하나였다.

2010년에 발표한 데뷔곡 ‘쿨하지 못해 미안해’로는 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하고 궁상맞게 집착하는 남성을 표현했다. 이후에도 군 생활의 비애를 다룬 ‘나는 군인이다’, 친정에 간 부인을 걱정하는 척하면서 실은 더 오래 머물다 오기를 바라는 남편을 그린 ‘장모님’, 술에 잔뜩 취한 친구를 챙기느라 고생했던 일을 기록한 ‘미안해’ 같이 웃음을 유발하는 작품을 꾸준히 선보였다.

마냥 우스꽝스러움만 좇은 것은 아니다. 유브이는 시대상에 대한 고찰과 풍자도 점차 드러냈다. ‘편의점’을 통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고충을 사실감 있게 묘사했으며, ‘그 여자랑 살래요’로는 자식과 결혼할 상대의 학벌을 중시하는 일부 어른들의 세속적인 태도를 꼬집었다. 불량 청소년들의 일상을 기술하면서 정신 차릴 것을 권고하는 ‘조한이형’, 미세먼지 때문에 힘든 현실을 소재로 한 ‘미세초’ 등으로도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유머를 기조로 삼았으나 유브이의 음악은 결코 우습지 않았다. 다채로운 형식과 견고한 구성을 아우른 덕분이다. 유로댄스(‘999’), 뉴 잭 스윙(‘집행유애’), 유로 디스코(‘이태원 프리덤’), 일렉트로 펑크(‘문나이트’), 슬로 잼(‘설마 아닐 거야’), 아레나 록(‘치어맨’) 등 여러 스타일을 소화하면서 각 장르의 특징을 잘 살려 맛깔나는 노래를 만들었다. 그룹의 다른 한 축 뮤지의 탁월한 프로듀싱으로 유브이는 전문성을 뽐냈다.

과거의 것을 가져오는 활동은 중년 팬들에게 잔재미를 제공했다. ‘성공’과 ‘메리 맨’은 각각 서태지와 아이들의 ‘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와 소방차의 ‘어젯밤 이야기’를 흉내 내 옛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문나이트’에서는 1990년대 인기를 끌었던 댄스 가수들과 히트곡들을 나열해 그 시절을 경험한 이들과 유대감을 형성했다. 모든 문장을 ‘구’로 끝내는 ‘999’는 ‘고’로 각운을 맞춰 한국어 래핑의 발전을 이끈 듀스의 ‘고! 고! 고!’를 되새기게 했다. 일련의 작업을 통해 유브이는 가요계 복고 유행의 선봉에 섰다.

이번 달로 데뷔 10주년을 맞은 유브이의 궤적은 꽤 화려하다. 일상생활에 밀착한 가사로 보통 사람들과 호흡했으며, 많은 이가 공감할 사항들을 정확하게 포착해 매번 웃음을 선사했다. 슬기로운 모방 작업, 충실한 짜임새로 예술적 가치도 갖췄다. 게다가 꾸준히 신작을 배출했다. 음악은 가볍게 들렸을지 몰라도 이때까지 걸음을 살펴보면 묵직함이 느껴진다.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