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사진) 전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17일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달라는 통합당의 요구와 관련해 “두고 봐야 한다”면서 여지를 남겼다. 김 전 위원장이 4·15 총선 참패로 표류하는 통합당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김 전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국회에서 의석이 많다고 해서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다.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얻은 180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 위원장은 17일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통합당 수습 방안을 묻는 질문에 “뼈 깎는 혁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총선 패인과 관련해선 “민주당이 대승한 건 코로나 바이러스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라며 “그다음은 통합당이 그동안 자체적으로 변신을 못한 요인이 겹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치인으로서의 황교안 전 통합당 대표에 대해선 “선거를 한 번 해본 적도 없고 정치도 처음 해보니까 정치적으로는 미숙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대패로 끝난 총선을 진두지휘했던 김 전 위원장에게 비대위원장 재등판이 거론되는 상황은 이례적이다. 당에선 ‘차르(러시아 절대군주)’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카리스마가 있는 데다 여야를 넘나들며 혼란을 수습해본 경험이 있는 김 전 위원장이 적임자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번 총선에서 간판급 후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 인물난이 커진 탓도 있다.
황 전 대표는 지난 15일 밤 사퇴 의사를 표명하는 기자회견을 열기 직전 김 전 위원장에게 “앞으로 당을 추슬러 달라”고 요청했다. 통합당 안팎에서는 총선 당선인들이 김 전 위원장에게 ‘전권을 가진 비대위원장’을 약속한다면, ‘김종인 비대위’가 뜰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음은 일문일답.
-비대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지금 할 일이 많고 정신도 없는 상황이다. 시간이 일주일이라도 지나야 하지 않겠나.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다.”
-황 전 대표의 당 수습 요청에는 뭐라고 답변했나.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이번 총선에 대한 예측은 빗나갔다.
“내가 특별히 예측한 게 뭐가 있나.”
-원내 1당이 될 수 있다고 했는데.
“선거를 끌고 가는 과정에서 할 수 있는 말이다. 장수가 승리를 장담하고 전쟁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통합당에 가기 전에 내가 ‘통합당은 (표를) 받을 자세가 안 돼 있다’고 그랬었다. 거기에다 공천도 엉망진창으로 해놓았다. 이런 것들을 다 알고 치른 선거였다.”
-통합당에선 당을 수습할 인물이 없다는 말도 나온다.
“각자가 인물이라고 생각하는데 왜 인물이 없다고 그러는가(웃음).”
-민주당에 대해선.
“이번 총선에서 얻은 180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 한다. 너무 과신하면 안 된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총선 다음 날) 말조심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얘기를 했는데 잘한 말이다. 국회에서 의석이 많다고 해서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다. 과거에 210석 넘게 가진 여당도 있었다.”(1990년 3당 합당을 통해 216석을 가진 거대 여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민자당)이 계파 갈등 끝에 92년 14대 총선에서 과반 확보에 실패했던 점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의미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