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 디폴트 기로… 유동성 위기에 ABS 조기상환 ‘경고등’

입력 2020-04-17 04:01

코로나19로 인한 항공업계 타격이 장기화되면서 미래 매출을 담보로 빌려놓은 돈을 예정보다 일찍 갚아야 하는 이른바 ‘조기상환 트리거 발동’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지금은 항공사들이 조기상환 개시 시점을 미루는 방식으로 버티고 있지만 자산유동화증권(ABS) 채무불이행(디폴트) 기로에 놓여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6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에서 발행한 ABS 각각 2건이 최근 조기상환 트리거가 발동됐거나 발동이 예상돼 조기상환 사유 발생 선언을 다음 달로 유예했다. ABS 발행은 항공기 운임료 등 미래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매출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항공사와 채권단 간 계약에 ‘3개월 연속 회사 경영이 악화될 경우 채권단은 조기상환을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의 조건이 있는데, 코로나19로 항공노선이 대폭 축소되면서 이런 조건이 충족된 것이다.

대한항공의 경우 지난 10일 2016년 발행했던 1000억원 규모의 ABS에서 조기상환 사유가 발생했다. 이 ABS는 홍콩 및 싱가포르 노선의 운임매출이 담보였는데, 최근 3개월간 노선 좌석 수가 평균 70% 이하로 떨어지면서 트리거가 발동됐다. 다만 아직 채권단의 요구가 없어 조기상환이 시작되진 않았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남은 대출금이 72억원에 그치고, 해당 ABS 결제계좌에 150억원이 있어 큰 문제는 없다”고 설명했다.

대한항공이 2018년에 발행한 4300억원 규모의 ABS도 지난달 말 조기상환 요건이 충족됐다. 담보로 잡은 미주노선 운항이 40% 이상 취소되면서다. 이 ABS에 신용한도를 제공한 신한은행이 상환 개시 시점을 9월 말로 유예하면서 간신히 조기상환 개시는 막았다.

아시아나항공은 일본, 싱가포르 등에서 한국인 입국을 제한한 지난달 말 이미 ABS 두 건에 대해 조기상환 사유 발생 선언을 다음 달 31일까지 유예해뒀다. 이 두 건은 2017년에 발행한 2100억원 규모의 사채와 2018년에 발행한 1500억원 규모의 ABS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일본과 싱가포르 노선 매출을 담보로 발행한 ABS였다”며 “조기상환 사유 발생이 예상돼 선언 시점을 미루고 추가 신탁 등을 선제적으로 조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유예는 한시적이기 때문에 항공사들이 디폴트 직전에 놓인 상황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유예 시점이 돼도 매출이 회복됐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조병준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시차를 두고 대부분의 주요 국가에 대규모 감염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사스, 메르스 때보다 항공 수요 위축 기간은 더 길어질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말 기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ABS 발행 잔액은 각각 1조9200억원, 4688억원에 달한다. 일각에선 다수의 ABS 조기상환 트리거가 동시에 발동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는 “디폴트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실효성 있는 지원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