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최초 볼셰비키 혁명가 김알렉산드라를 아시나요”

입력 2020-04-19 20:09
신작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을 발표한 만화가 김금숙. 그는 역사 만화를 주로 그리는 이유를 묻자 “역사는 독자 모두에게 연결된 소재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제공

“처음에는 책이 출간되기만 해도 기쁠 거 같았어요. 그런데 민들레 홀씨처럼 제 책이 한국을 떠나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가더군요. 전쟁 희생자가 겪는 보편적인 아픔, 세계 여성들 누구나 느끼는 공감대를 건드렸기 때문인 것 같아요.”

만화가 김금숙(49)은 16일 국민일보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 ‘풀’이 세계적 주목을 받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김금숙은 “굉장히 어렵게 작업한 책이었다”며 “힘들었지만 어떻게든 작품을 완성해야 한다는 강한 마음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2017년 국내에 출간된 ‘풀’은 일본군 위안부 희생자 할머니의 삶을 그린 작품으로,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등으로 번역됐다. 아랍어와 스페인어로도 번역될 예정이다. ‘풀’은 지난해 미국 뉴욕타임스가 뽑은 ‘2019 최고의 만화’에 이름을 올렸다. 영국 가디언도 이 작품을 ‘2019 최고의 그래픽노블’에 선정했다. 낭보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LA타임스는 지난 14일(현지시간) ‘풀’이 올해 LA타임스 도서상 후보에 올랐다고 발표했다.


김금숙을 인터뷰한 것은 그의 신작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사진)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책은 조선인 최초의 볼셰비키 혁명가 김알렉산드라(1885~1918)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언론인 출신 소설가 정철훈이 쓴 ‘소설 김알렉산드라’을 원작으로 삼았다.

김알렉산드라는 한국 독자에겐 낯선 인물이다. 그는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태어난 한인 2세다. 러시아혁명에 참여했고, 러시아 한 벌목장에서 조선인 중국인 등 소수민족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투쟁을 이끌었다. 러시아공산당 극동 지역 인민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하지만 1918년 9월 하바롭스크를 점령한 일본군과 러시아 반혁명 세력에게 처형 당했다. 책에는 그의 굴곡진 인생 역정이 거친 질감의 그림을 통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김금숙도 김알렉산드라의 존재를 몰랐었다. 그가 김알렉산드라의 삶을 마주한 것은 2018년이었다. ‘독립운동가 웹툰 프로젝트’를 기획한 성남문화재단 이도헌 단장으로부터 청탁을 받은 것이 시작이었다. 김금숙은 “평전을 읽는데 마음을 흔드는 부분이 많았다”며 “김알렉산드라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양면성을 지닌 인물”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이 작업에 동참해야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하지만 알면 알수록 그의 삶에 빠져들게 되더군요. 2018년 11월에 제안을 받아들였고, 1년 동안 작업을 했어요. 작업 기간 내내 김알렉산드라의 영혼이 돼서 그림을 그렸던 것 같아요.”

표지에는 ‘조선인 최초의 볼셰비키 혁명가’로 소개돼 있지만 김알렉산드라는 하나의 수식어로 규정짓기 힘든 인물이다. 혁명가인 동시에 독립 운동가였고, 시대를 앞서 간 페미니스트이기도 했다. 작품 속에는 마지막으로 법정에 선 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죄를 추궁하는 재판관들에 맞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내가 당신의 말대로 여성으로서 자신의 범죄를 뉘우친다면, 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배신하고 전 세계 여성 앞에 죄를 범하게 될 것이다.”

김금숙은 전남 고흥 출신으로 세종대 회화과를 나와 1994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프랑스에서 조각가와 만화가로 활동하다가 2011년 귀국해 현재는 경기도 강화에 살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풀’ 외에 소설가 박완서의 작품을 그래픽노블로 구현한 ‘나목’, 발달장애 뮤지션 이야기를 다룬 ‘준이 오빠’, 제주 4 3항쟁을 그린 ‘지슬’ 등이 있다. 현재는 남북 이산가족의 아픔을 담은 후속작 ‘기다림’(가제)을 준비 중이다. 이 작품은 이르면 올겨울에 출간된다.

“저희 어머니가 이산가족이에요. 한국전쟁 당시 언니랑 헤어졌고, 그 뒤로 북한에 있는 언니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죠. 25년 전부터 구상한 작품이에요. 지금 열심히 그리고 있답니다(웃음).”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