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모세의 기적’으로 불리는 바다 갈라짐 현상이 일어나는 곳이 여럿 있다. 경기도 화성 제부도, 인천 실미도, 충남 보령 무창포, 경남 통영 소매물도 등 국립해양조사원이 바다 갈라짐을 예보하는 곳만 14곳이다. 대부분 자동차로 접근이 쉽거나, 매일 또는 수시로 길이 열린다.
하지만 전남 진도 등은 연중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만 열리고 인천 옹진 소야도 등은 배를 타고 가야 볼 수 있다. 14곳에 포함되지 않은 곳이 있다. 전남 여수시 화정면 사도(沙島)와 추도(鰍島)를 연결하는 바닷길이다. 한 해 3~4차례, 그것도 배를 타고 가야 볼 수 있을 정도로 만나기 쉽지 않은 곳이다.
사도와 추도는 전남 고흥과 여수 사이 다도해에 흩뿌려진 여러 섬 가운데 일부다. 작은 섬이지만 때 묻지 않은 자연과 빼어난 해안 경치, 태곳적 신비를 간직한 경이로운 곳이다. 특히 좁은 섬 안에 귀한 등록문화재와 천연기념물을 품고 있는 ‘보물섬’이다.
추도·사도는 낭도, 목도, 적금도와 함께 중생대 백악기(1억 3500만∼6500만 년 전) 공룡 발자국 3500여 점이 흩어져 있는 ‘쥐라기 공원’이다. 사도에 755점, 추도에 1759점이 분포돼 있다. 공룡 발자국 화석지와 퇴적층은 2003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추도와 사도의 독특한 돌담은 2007년부터 등록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다.
깔끔한 ‘모래섬’ 사도는 본섬(사도)과 간댓섬(중도)·시루섬(증도)·진댓섬(장사도)·나끝·연목 등 크고 작은 섬들을 아우르고 있다. 선착장 앞 마을 입구에 두 개의 커다란 티라노 사우르스 공룡 모형이 서 있다. 해안을 따라 본섬을 한 바퀴 도는 탐방로가 조성돼 있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에 담쟁이를 두른 돌담과 아담한 지붕, 푸른 마늘 텃밭 등이 정답고 소박하다.
본섬과 간댓섬 사이 사도교 아래 바위 마당은 공룡들의 놀이터다. 400여개의 공룡 발자국이 산재해 있다. 화산폭발 때 생긴 둥글둥글한 바위는 공룡알을 연상케 한다.
사도교를 건너면 간댓섬과 시루섬을 연결하는 모래밭이 나온다. 밀물 때 잠기고, 썰물 때 양쪽에 바다를 끼고 모래밭이 드러나는 ‘양면해수욕장’이다. 시루섬은 봉긋 솟은 섬 모양이 시루처럼 생겨 한자로 시루 증(甑)자를 써서 증도라고 한다.
시루섬의 기암은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입구를 지키는 거북바위를 지나면 사람의 얼굴을 닮은 ‘얼굴바위’ 등을 만난다. 반듯하게 잘린 웅장한 직벽과 그 아래 높은 돌천장(처마바위)을 갖춘 야외음악당 모양의 널찍한 마당바위(멍석바위)가 이채롭다. 바로 옆에는 거대한 ‘고래바위’가 바다를 향하고 있다. 이어 용암이 바다로 흘러내리다 급격하게 식으면서 형성된 용꼬리 모양의 ‘용미암’이 있다. 유독 청록색을 띤 30여m 기둥 형상의 바위는 꼬리를 바닷물에 담근 모습이다.
사도에서 750m쯤 떨어져 있는 추도는 여수시 화정면의 15개 유인도 중에서 가장 작은 섬이다. 미꾸라지를 닮지 않았지만 ‘미꾸라지 추’ 자를 쓴다. 섬이 작아 고기 중에서 아주 작은 미꾸라지와 비교해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섬은 작지만 가치조차 작은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층암절벽과 함께 공룡 화석지가 있어 신비로운 섬이다. 마을 왼쪽 ‘용궁 가는 길’과 우측 해변을 따라 공룡발자국 화석지가 이어진다. 세계 최대 길이(84m)의 공룡보행렬을 볼 수 있다. 100년은 족히 됨직한 돌담도 인상적이다.
사도와 추도 사이 바닷길은 매년 음력 정월대보름, 2월 영등사리 등 서너 차례 열린다. 음력 정월대보름과 2월 영등사리 때 가장 크게 갈라진다. 이때 추도와 사도 본섬 및 부속섬 등이 ‘ㄷ자’ 모양으로 이어지는 신비를 연출한다. 바다 갈라짐 현상은 지난 2월 9~12일(음력 1월 16~19일)과 3월 9~12일(음력 2월 15~18일), 4월 8~9일(음력 3월 16~17일)에 있었다. 아쉽게도 올해는 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
여행메모
차로 닿는 낭도에서 뱃길 10분이면 사도
채취한 해산물로 집밥 내는 민박집 15곳
전남 여수의 사도로 가는 길이 한결 쉬워졌다. 이미 연결된 팔영대교에 이어 지난 2월 28일 여수와 고흥(여수~조발도~둔병도~낭도~적금도~고흥)을 잇는 조화대교·둔병대교·낭도대교·적금대교 등 연륙·연도교가 추가 개통되면서 낭도에서 배를 타고 10분이면 도착한다. 과거 백야대교로 육지와 이어진 백야도선착장에서 개도~하화도~상화도를 거쳐 가는 길은 1시간쯤 걸렸다.
카페리가 백야도선착장에서 오전 8시, 11시 30분, 오후 2시 50분에 출항한다. 이 뱃길의 종착점이었던 낭도는 출발점으로 바뀌었다. 낭도 출발은 오전 9시 40분, 오후 1시 10분, 4시 30분이다. 사도에서 낭도로 가는 배 시간은 9시 10분, 낮 12시30분, 오후 4시쯤이다. 추도로 가는 정기 배편은 없다. 사도선착장에서 낚싯배로 10분가량 걸린다.
사도 둘레길은 사도와 중도, 시루섬을 한 바퀴 도는 길이다. 공룡발자국화석과 바다 가운데로 백사장이 이어진 양면해수욕장, 기암괴석들을 감상하며 가볍게 걸을 수 있다.사 도선착장에서 양면해수욕장까지 다녀오는데 20분이면 족하다.
사도에는 민박집이 15곳 정도 있다. 바다에서 직접 채취한 해산물로 상차림을 한 집밥 맛이 좋다. 낭도에는 최근 지어진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추도에는 민박집이 없다.
사도(여수)=글·사진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