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삭감·휴업’ 피 마르는 하루하루… 이러다 문 닫을 판

입력 2020-04-16 04:0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불러온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가 국내 완성차 업체를 넘어 중소 규모의 협력사로 뻗치고 있다. 협력사 관계자들은 임금 삭감, 휴업 등 온갖 자구책에도 당장 공장 문을 닫을 처지가 됐다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자동차업계의 구조적 특성 탓에 완성차 업체의 일시 생산 중단 등 ‘기침’에 협력 업체들은 생사의 기로에 선 것이다.

15일 국민일보가 완성차 업체에 부품을 납품하는 국내 1~3차 협력사 관계자들을 취재한 결과 협력사들은 이미 휴업과 임금 삭감, 월급 유예, 생산 감축 등 조치를 통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규모가 작은 협력사 중엔 이미 부도가 난 곳도 있었다.

대구 소재 2차 협력사인 A사는 완성차에 들어가는 각종 금속 부품을 만든다. 1차 협력사는 A사의 부품을 가공하거나 페인팅·도금 작업을 한 뒤 완성차 업체에 납품한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쌍용자동차, 르노삼성자동차, 한국지엠 등 국내 완성차 5개사와 미국 3사(GM, 포드, 피아트크라이슬러) 등 다수 업체에 부품을 팔지만 이달 초부터 생산량이 확 줄었다.

A사 관리자인 김모씨는 “지난달까지는 기존에 잡힌 수요가 있어 그럭저럭 버텼다. 4월부터 완성차 조립 대수가 줄면서 1차 협력사가 부품 주문을 받지 않는다”며 “조업시간을 줄이고 근무일수도 조정했지만 많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 회사는 지난달 대비 매출이 50% 감소했다. 부품 생산량은 30% 수준으로 떨어졌다. 김씨는 “다음달엔 생산량이 반토막날 것 같다. 6월쯤 돼야 미국·유럽 지역이 코로나19가 안정세에 접어들 거라는 전망이 있다”며 “어쨌든 이 보릿고개를 버텨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B사는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1차 협력사다. 주로 기아차의 플라스틱 내외장재를 생산한다. B사 관리자인 윤모씨는 “기아차가 오는 23~29일 수출용 차량을 생산하는 공장을 임시 휴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데, 협력사도 영향받을 수밖에 없다”며 “지난달 100%였던 생산량이 이달 70%대로 떨어졌는데, 5월에는 더 감소할 것 같다”며 한숨지었다.

B사는 현재 현장직 단축근무와 순환휴무, 관리직 임금 20% 삭감 등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이달 말에는 지난 2월 유예했던 직원들의 월급을 뒤늦게 지급한다.

윤씨는 “협력사는 당장 먹고살기가 힘들다. 대기업은 휴업수당이라도 있지만 우리는 앞으로 연차나 무급휴가를 써야 한다”며 “인기 차종이 있을 땐 특근도 했지만 지금은 그냥 공장이 정상 가동되기만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인천 소재 2차 협력사인 C사는 이달 초부터 전면 휴업에 들어갔다. 이곳은 그나마 부채가 없어 버티고 있지만 운영자금을 미리 빌린 소규모 2, 3차 협력사들은 문제가 심각하다.

C사 관계자는 “협력사 대부분이 운영자금을 미리 빌려 부품을 만들고 임금을 준다. 매출이 줄면 교환자금을 갚지 못해 한 달만 쉬어도 부도가 나는 구조”라며 “지난달 내가 아는 2, 3차 협력사만 세 곳이나 부도가 났다. 전국적으로는 수두룩할 것”이라고 했다.

협력사들의 가장 큰 고민은 자금이다. 자생 협력사들은 대기업 계열사와 달리 자금 융통도 어렵다.

김씨는 “결국 공장을 돌리는 건 돈이다. 완성차 업체가 협력사에 자금 지원도 하지만 전부 혜택을 받지는 못한다”며 “회사를 살리기 위해 돈을 빌리려 해도 실제 은행에 가보면 대출 조건이 까다롭고 문턱도 높다”고 말했다.

윤씨는 “(정부는) 왜 작은 회사가 파산하고 대출받기가 어려운지 모르는 것 같다. 1차 협력사도 대출이 이렇게 힘든데 2, 3차는 꿈도 못 꿀 것”이라며 “단순히 돈만 푼다고 되는 게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