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코로나 리셋 이후 세상은

입력 2020-04-16 04:06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급증한 지난 4일까지 3주간 미국에선 1680만명이 실업수당을 신청했다. AP통신은 미국 근로자 10명 가운데 1명 이상이 이 기간에 일자리를 잃은 셈이라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자랑인 ‘일자리 창출 신화’가 바이러스에 속절없이 무너진 것이다.

코로나19는 전 세계를 백지상태로 만들었다. ‘쇼크→침체→회복’의 사이클이 단기간에 진행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소수다. 오히려 새로운 바이러스에 맞선 대응이 한시적이 아닌 새로운 일상, 즉 ‘뉴노멀(New Normal)’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대세다.

그렇다면 코로나가 리셋한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 경제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 침체를 겪고, 한국 경제도 올해 역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처럼 당장은 깜깜하지만 잘하면 우리에게 더없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다소 희망 섞인 전망이지만 메르스 사태 경험이 코로나19 방역에 자양분이 됐듯이 멀지 않은 과거에 겪었던 극단적인 뉴노멀이 우리에게 면역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돌이켜보면 1997년 말 국가부도 사태를 겪은 후 대한민국은 과거와 다른 세상으로 변했다. 직장 내 ‘집들이 문화’가 자취를 감출 정도로 신자유주의 물결에 기존 정서와 관습은 황폐화됐다. 돈보다 명예를, 나보다 공동체를 중시하는 전통적 가치들은 개인주의와 시장만능주의로 대체됐다. 직장인들은 강남에 내 집 마련하는 게, 청소년들은 ‘건물주’로 사는 게 꿈인 나라가 돼 버렸다.

그런데 2008년 말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의문을 던져줬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후엔 그 회의가 더 커졌다. 공공 안전을 시장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논의도 본격화했다. 이런 상황에서 서구 선진국들이 코로나19에 도미노처럼 쓰러지자 사람들은 이제 스스럼없이 새로운 질서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스페인 이탈리아에 이어 신자유주의의 중심인 미국 뉴욕의 시장까지 의료 관련 시설의 국유화를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보수 야당이 ‘국민에게 1인당 50만원을 주자’는 선거 공약을 꺼내들었다. 몇 달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리셋이 가져올 뉴노멀을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촉박하지만 준비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기존 질서의 급속한 파괴에 따른 충격이 공동체를 빠르게 해체했던 외환위기 이후의 재연을 막을 수 있다.

먼저 산업구조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여행, 항공 등 사람에 의존하는 재래식 기업에 순식간에 극심한 위기가 몰려왔듯 코로나가 불러온 비대면 문화 확산은 인공지능(AI), 로봇 등 4차산업으로의 전환 속도를 가속할 것이다. 글로벌 밸류체인 붕괴에 세계화에서 지역화로, 공급망을 중국 외 다른 지역으로 잇따라 옮기는 추세도 나타날 수 있다. 적극적인 재정정책도 필요하다. 이동 제한에 따른 수요와 공급의 동시 차질은 장기 침체를 부를 것이다. 완화적 대출정책뿐만 아니라 정부 부채 증가를 두려워하지 말고 실업수당, 고용유지지원금을 대폭 늘려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연대다. 정부와 약사들, 스타트업·IT기업 종사자들이 머리를 맞댄 채 밤을 새워가며 만든 마스크 앱이 마스크 대란을 일정 부분 누그러뜨린 것처럼 앞으로 닥칠 위기 상황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선 민관 협력은 필수다. 민관 협력을 바탕으로 바뀌는 패러다임에 맞춰 규제를 정비하고 미래형 산업 정책을 꾸려야 한다. 이런 방식의 국가 운영과 위기 대응이 상시화한다면 대한민국은 코로나 모범 방역국을 넘어 시장경제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한장희 산업부장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