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박혜진 평론가가 소개한 책은 김인환 문학평론가의 ‘타인의 자유’다. 선생은 제목 ‘타인의 자유’라는 제목의 연원으로 로자 룩셈부르크의 다음과 같은 말을 제시한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유.” 아마도 그러한 자유가 가장 범람하는 장소가 책일 테다.책은 다르게 생각하게 만들며,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한 권의 책을 공들여 읽는 동시에, 다른 책과 겹쳐 읽음으로써 맥락을 연결하고 조정하며 창조한다. 자유의 범람을 가능하도록 만드는 “맥락의 홍수” 앞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태도는 겸손이다.”
저자의 권고에 따라 몇 권의 책을 함께 읽었는데, 그중 ‘타인의 자유’와 이어 읽기에 좋은 책으로 한 권을 꼽으라면 이 책이다. ‘내일 아침에는 눈을 뜰 수 없겠지만’. 영국 완화의료 의사인 캐스린 매닉스의 에세이다. 먼저 완화의료의 정의에 익숙해지는 데 독서의 상당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완화의료란 회복이 어려운 환자, 즉 죽음을 앞둔 환자의 안정과 증상 완화를 위한 치료를 가리킨다. 환자와 가족에게 행하는 정서적 안정과 상담도 이에 포함된다. 책의 내용 또한 위의 의료행위의 신실함과 다정함에 기대어 있다. 그리하여 이 책은 ‘완화의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사려 깊고 정확한 설명서가 된다. 그리고 동시에 죽음에 대한 각별하고 진지한 안내서이기도 하다. 우리는 죽음을 모른다. 사후세계를 모른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임종의 순간 환자의 몸과 마음을 모르고, 그것을 받아들일 유족의 마음을 잘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죽음이라는 검은 성채에 달라붙은 조가비들을 애써 무시해왔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채집하는 행위도 오랜 시간 배척했다.
의사는 현대사회에서 죽음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직업이다. 완화의료 의사는 의사 중에서도 더욱 죽음과 지척에 있다. 저자는 암 병동과 호스피스에서 일하며 겪은 숱한 임종의 순간을 서술하며, 하나의 죽음 곁에 머무른 조가비들을 이야기 안으로 거두어들인다. 그 이야기에는 죽음의 주인인 환자 본인뿐만 아니라 환자의 가족, 의사, 간호사, 지역 사회와 저자의 가족까지 속해 있다. 아마도 인턴 시절부터 계속됐을 메모에 의지한 것으로 보이는 서술은 의사답게 정교하고 정확하다. 필시 그 시절부터 몸에 배어 있었을 숙의와 배려는 죽음의 여정 곳곳의 모퉁이를 따스하게 비춘다. 죽음을 기다리는 수동성이 싫어 차라리 자살을 택하겠다는 알렉스, 확고부동한 자세로 현실을 외면하며 미래를 계획했던 샐리,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죽음이라는 공동의 적을 두고 각자의 싸움을 하고 있던 넬리와 조, 여섯 살 아들의 생일파티를 위해 치료를 일주일 미룬 퍼거스와 그 때문에 남편의 죽음을 준비하지 못한 매기(특히 이 부부의 사연에서 주책없이 눈시울을 붉혀야 했다), 호스피스 병동에 만나 서로의 영혼을 달래준 전직 의사와 전직 재즈가수….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은 곧 죽을 환자들에게 소설의 주인공만큼이나 애정을 쏟게 만드는 작가의 필력이다. 이곳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내일 아침이면 눈을 뜨지 못하니.
우리는 최근 애도에 관하여 많은 대화를 나눠야 했다. 이맘때는 더욱 그렇다. 이 책은 애도는 평안한 죽음에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완화의료는 사람의 평안한 결말을 돕는다. 연명치료를 스스로 선택하고, 종교나 가족을 위해 자신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이들의 모습은 병의 심각성에 비해 몹시 강인했다.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기에, 우리는 겸손한 태도로 죽음 앞에 서야 한다. 모든 죽음은 뜻밖이겠지만, 최대한 그것을 인간의 뜻 안으로 끌어당겨야 한다. 거기에서부터 애도는 출발할 수 있다. 코로나19 희생자가 세계적으로 11만명이 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명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적지 않은 숫자다. 바이러스는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은 물론 장례 절차마저도 파괴해 버린다. 감염의 위험 때문에 임종을 순간을 지키지 못할뿐더러 정상적인 장례 의식도 불가능하다. 팬데믹은 완화의료도 어쩌지 못할, 인간의 뜻 바깥에서의 죽음을 발생시킨다. 그리하여 인간의 목숨이 하찮아지고 있다. ‘내일 아침에는…’은 지금 필요한 단 하나의 명제를 일깨운다. 세상의 모든 죽음은 존엄해야 한다. 이 명제와 이 재난의 부딪침 앞에서, 우리가 취할 유일한 태도는 겸손일 것이다.
서효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