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미술] 거대한 돔, 박정희 한마디에 급조된 불통의 아이콘

입력 2020-04-18 04:03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치른 다음 날인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육중한 가분수 돔을 머리에 인 채 평소처럼 서 있다. 1975년 준공된 국회의사당의 돔은 설계 초안에는 없었지만, 박정희 대통령 한 마디에 건축적 비례를 무시하고 장식처럼 얹히게 됐다. 그 때문에 돔 아래에 넓은 회의장이 있는 서구 건축과 달리, 우리 국회의사당 돔 밑에는 생뚱맞게 중앙 로비가 있다. 권현구 기자

“마징가제트야” “아니야. 태권V지.”

이번 주 ‘궁금한 미술’에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대해 쓰겠다고 하자 40∼50대 사이에선 난데없이 로봇 논쟁이 벌어지며 추억이 소환됐다. 1970년대 후반에 철부지 청소년기를 보냈던 이들을 매료시켰던 로봇 애니메이션 주인공들. 두 로봇 중 하나는 적을 쳐부수러 출격할 때 돔이 열리며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확인해보니 정답은 태권V였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1969년 7월 기공돼 1975년 8월 준공됐다. 애니메이션은 그 시절에 상영됐고, 막 신축된 국회의사당 푸른 돔이 주는 인상은 그렇게 강렬했다. 돔이 상자처럼 밋밋한 건물에 얼마나 가분수처럼 얹혀 있는지를 일반 국민들도 알아봤던 것이다. 국회의 돔 뚜껑이 열리면 태권V가 나올 거라는 농담은 그래서 나왔을 테다.

돔과 기둥 ‘국적 불명 무대장치’ 혹평

국회의사당은 박정희 시대의 대표적 건축물이다. 여의도 33만579㎡(10만평) 부지에 지하2층∼지상 6층(높이 70m), 연면적 8만1443㎡ 규모로 지어졌다. 단일 의사당 건물로는 동양 최대였던 이 건축물의 이미지를 특징짓는 두 가지는 열주(늘어선 기둥)와 푸른 돔이다.

그런데 모더니즘 양식의 심플한 몸체에 고전주의 요소인 열주와 돔을 덧붙였으니 건축적으로는 기형적인 건물이 됐다. 당시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가들이 참여했음에도 이런 결과물이 나온 건 ‘건축이 권력의 시녀가 된 첫 케이스”(박민철 시간향건축사무소장)였기 때문이다.

1968년 선정된 국회의사당 첫 설계안에는 돔이 없었다. 미국 하와이를 다녀와 주 의회의사당의 돔을 보고 거기에 꽂힌 박 대통령이 “여의도 국회의사당에도 돔을 얹지 그래”라고 하는 바람에 돔을 얹게 된 것이다. 지름 64m, 높이 20m, 무게 1000t의 크고 육중한 돔은 그렇게 권력자 한 마디에 탄생했다. 건축에서는 황금비율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무시된 것이다.

서양에서 돔은 종교적 믿음이나 왕권, 국가적 이상의 상징이다. 로마의 판테온 신전, 성 베드로 성당, 미국 국회의사당 등이 그런 예들이다. 동양에서는 서구에 대한 콤플렉스, 근대화에 대한 열망의 표식처럼 도입됐다. 1969년 5월 국회의사당의 설계 변경이 발표됐을 때, 당시 언론은 거세게 비판했다. 한 기사에서 건축가 안병의씨는 “돔식 건축의 대표적인 것이 옛 조선총독부 건물이던 현 중앙청 건물이다. 이런 건축 양식은 제국주의가 식민지에 자기 나라 위세를 보이기 위해 즐겨 세우던 콜로니얼 스타일”이라고 전제하며 “총독부 악령 되살아나는 듯 불안”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여론을 의식해서일까. 애초 5층으로 설계됐던 국회의사당은 중앙청(5층)보다 높아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6층으로 높아졌다. 이렇듯 권력자 입맛에 따리 시공 과정에서 누더기가 된 것이 국회의사당이다.

흥미로운 것은 열주 역시 서구 콤플렉스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기본 설계안이 빌려온 것은 고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열주 형식이다. 원로 건축가 김원씨는 “돔뿐 아니라 기둥도 거기 있어야 할 건축 구조적 타당성 없이 장식처럼 붙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회의사당이 신축된 그해 가을 건축전문지 ‘공간’에 “국적 불명의 무대 장치”라고 혹평한 바 있다. 건축물 자체가 기형적이다보니 스토리로 얼버무리기 위해 정면에 보이는 8개의 열주는 전국 팔도의 민의를, 돔은 그것이 하나의 정책으로 수렴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거라는 ‘조작된 상징’이 생겨났다.

국회 중앙 로비인 로텐더홀. 권현구 기자

정치 시녀가 된 설계 시공과정

이런 사태는 설계 공모 과정의 후진성에서 충분히 예견됐다. 정부는 지명공모를 하면서 일반 공모를 병행하는 이상한 행정을 했다. 설계기간도 2개월이라는 말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 주어졌고, 건축가의 ‘저작권’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지명 공모 6명 가운데 김수근 등 3명이 불참했고, 일반 공모 보이콧 움직임까지 일었다. 어쨌든 지명 건축가로 장충체육관을 설계한 김정수, 주한프랑스대사관을 지은 김중업, 서울대 캠퍼스를 설계한 이광노, 그리고 일반 공모로 당시 서울대 강사였던 안영배 등이 참여했다. 당시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이 참여했지만 모두 자신의 이름이 지워지기를 바라는 바람에 건축가 ‘없는’ 건축물이 됐다. 후대에도 건축 비평계조차 다루고 싶어 하지 않는 ‘버림받은 자식’ 신세가 됐다.

입지 자체도 정권의 정치적인 산물이었다. 1948년 시작된 제헌국회는 처음 서울 중앙청을 고쳐서 국회의사당으로 썼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엔 서울 태평로의 부민관(현 서울특별시의회 본관)을 고쳐서 사용했다. 이승만 정권 말엽에야 남산(백범광장 근처)에 국회의사당 신축 계획을 세우고 설계공모를 끝냈다. 기초공사까지 했으나 1961년 5 16군사정변으로 백지화됐다.

공사가 진행 중인 국회의사당 항공사진. 서울역사박물관·김원 건축가 제공

처음 남산이었던 국회의사당 부지는 어떻게 여의도로 옮겨지게 됐을까. 이즈음인 1965년부터 서울시는 제3한강교 건설계획과 함께 강남지구 개발에 착수했다. 1967년엔 한강 전역에 견고한 제방을 구축하는 내용을 담은 대대적인 한강종합개발계획을 발표했다. 모래벌판인 여의도를 서울의 중심업무지구로 키우는 여의도개발은 이 계획의 핵심이었다.

60년대 정부 주도 개발계획의 첨병이던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에서 일하며 여의도마스터플랜에 참여했던 김원 건축가는 “여의도를 중심업무지구로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파워풀한 건축물이 필요했다. 그래야 개발에 탄력이 붙는다는 논리로 유치한 것이 국회의사당이었다”고 회고했다.

국회의사당은 여의도 양말산 앞에 배산임수(背山臨水)의 구도로 세운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불도저 시장으로 통했던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이 여의도를 둘러싸는 제방인 윤중제를 서둘러 쌓기 위해 바위산인 양말산을 폭파시키는 바람에 무산됐다. 거기서 나온 자갈로 제방을 쌓은 것이다.

1968년 윤중제 준공식 때 당시 김현옥 서울 시장의 설명을 들으며 표석을 바라보는 박정희 대통령 부부. 서울역사박물관·김원 건축가 제공

돔을 폭파?…소통 국회로 거듭나려면

그렇게 속도전과 정치 우위, 서구 콤플렉스로 점철됐던 1970년대 박정희시대를 증거하는 것이 국회의사당이다. 지금도 국회가 싸움질을 일삼으며 후진적 행태를 되풀이하는 것은 이런 태생적 한계에서도 기인한다. 남북통일이 되었을 때 양원제 구성을 대비해 2개의 대형 회의장을 만들었다지만, 건축 형태에서는 통일에 대한 어떤 비전도 체감할 수 없는 건축물이다.

지난 4월 15일, 우리는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치렀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1948년 1대 국회가 시작됐지만 국회의 선진화는 지금도 요원해 보인다. 과거 일제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중앙청을 폭파한 것처럼 불통과 무소불위의 권력기관 국회를 거듭나게 하기 위해 저 가분수 돔을 없애야 할 것인가.

50주년을 앞두고 국회공간문화자문위원회가 구성됐다. 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원 건축가는 “국회의사당은 잘났든, 못났든 하나의 이미지로 굳어졌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에서는 50년이 넘으면 문화재가 될 자격이 주어지지 않나. 건축 외관을 손대기는 어렵고 대신 사랑받는 건물로 태어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익대학교 조한 교수는 “국회의사당은 여의도의 3분의 1이나 되는 면적을 차지하고 있지만, 거대한 도로에 의해 나머지 지역과 단절되어 시민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업의 중역 의자 같은 회의장 의자도 문제다. 의자가 편하니 의원들이 본회의 도중에 조는 것 아니냐. 영국 의회처럼 딱딱한 벤치형 나무의자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국회의원이 바뀌어야 한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특권을 내려놓을 때 국회의사당이 돔은 만화 캐릭터처럼 진짜 친근하게 다가올 것 같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