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6주기가 됐지만 세상은 너무나 빨리 세월호를 잊어가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의 아픔은 그대로인데, 많은 이들은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유가족 곁에서 세월호와 우리 사회를 영상, 구술로 기록했던 이들은 시민의 공감과 참여가 줄어드는 것에 가슴 아파하고, 세월호에 대한 정치적 공격에 분노했다.
세월호 6주기를 앞둔 지난 13일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에서 활동했던 부성필(30) 감독을 만났다. 그는 19대 대선이 치러졌던 2017년 5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전남 목포에 상주하며 세월호 인양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는 정권이 바뀌었으니 세월호를 둘러싼 많은 것이 바뀔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상당 부분 예상을 빗나갔다.
부 감독은 “정권은 바뀌었는데, 공무원은 바뀐 게 없었다”고 했다. 부 감독에 따르면 2018년 초 폭설로 인해 선체조사 작업이 중단됐을 때 한 유가족이 선체 주위를 돌아보다가 뼛조각이 하나 발견됐다고 한다. 부 감독은 “나중에 동물뼈로 확인되긴 했지만, 공무원들이 선체 주변 관리를 얼마나 허술하게 했는지 드러내는 증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 실내에 쌓인 진흙은 원래 손으로 긁어내야 하는데, 한번은 한밤중에 굴삭기로 이를 긁어내려다 유가족에게 걸린 적도 있다”며 “유가족들이 ‘선체 내 유품을 꼼꼼히 건져 달라’고 요구하며 공무원들과 싸운 일이 많았다”고 전했다.
유가족들과 시민사회의 동력도 생각보다 빨리 떨어졌다. 부 감독은 “참사 초기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활동했던 유가족은 300명 정도였는데, 인양을 마치고 자신이 목포에서 올라올 때쯤에는 50여명으로 줄어 있었다”고 기억했다.
‘4·16기록단’에서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5개월간 영상 기록 활동을 한 박정남 PD도 비슷한 증언을 했다. 박 PD는 “처음에 나는 진도체육관 2층에서 자고 유가족은 1층에서 생활했는데, 가족들이 빠져나가면서 1층으로 내려왔다”며 “시민단체나 자원봉사자도 갈수록 줄고, 식품 후원도 눈에 띄게 줄었다”고 전했다.
‘4·16 기억저장소’ 구술증언팀에서 유가족의 증언을 문서로 남기는 작업을 해 온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는 “4·16 기억교실을 안산교육지원청 자리에 옮겨놨는데, 이런 전시관을 방문하는 시민 숫자의 추이를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시민의 공감과 참여가 약해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며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공격은 계속되는데 시민들의 관심과 동참, 공감이 줄어드는 현실을 지금 목도하고 있는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들을 더 괴롭히는 건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을 아무렇지 않게 모욕하는 이들이다. 부 감독은 “목포에서 1년을 지내면서 세월호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너무나 빨리 변하는 걸 느꼈다”고 했다. 그는 “목포신항이 2017년 말 일반인에게 개방되면서 관광지로 전락해 버렸다”며 “주말마다 사람들이 큰소리로 노래를 틀어놓은 관광버스를 타고 와서 구경하곤 했는데, 한 할아버지가 세월호에 침을 뱉고 욕을 하던 장면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차라리 선체를 해체하는 과정부터 일반에 공개했다면 관심을 더 가졌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선거 때마다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세월호 막말’에 진심으로 분노했다. 박 PD는 “세월호를 정치 프레임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에게 ‘진도체육관에서 딱 열흘만 머물러 보라’고 하고 싶다. 자식 잃은 슬픔이라는 건 그 누구도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PD는 “(세월호 참사 당시) 진도체육관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며 “시신이 올라오면 체육관에 있던 유가족이 빠져나가는데, 실종자 가족에서 유가족이 되면 다들 축하해줬다”고 했다. 그는 “지옥에 있다가 빠져나왔으니까 그런 것”이라며 “실종자 가족이라는 상태에서 해방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만큼 컸다”고 전했다.
지난 15일 치러진 제21대 총선 과정에서도 일부에선 세월호 추모시설인 4·16생명안전공원에 조성이 추진되고 있는 희생자 봉안시설을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8년 지방선거 때도 4·16생명안전공원 조성 문제와 관련해 ‘납골당이 웬말’ ‘세월호는 세금도둑’이라는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반발한 이들이 있었다.
세상은 빠르게 세월호를 잊어가지만 자녀와 부모, 형제를 잃은 유가족의 슬픔은 지금도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김 교수는 “유가족을 둘러싼 세상은 변하는데 유가족의 마음은 지금도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주 제가 한 유가족으로부터 구술 증언을 받았는데, 몇 년 전 받았던 유가족의 구술 증언과 놀랍도록 비슷하다”며 “사람들은 유가족에게 ‘이제 아이들을 가슴에 묻고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유가족의 가슴은 아직도 2014년에 머물러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가족은) 지금도 방에서 아이가 튀어나올 것 같고, 하늘에 있는 아이가 지금도 자신 옆에 있는 것 같다는 마음을 변함없이 갖고 살아간다”며 “세상의 시선과 시민들의 관심, 국가의 대응이 시간이 지남과 함께 변화하고 있음을 유가족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