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의 한 축인 전세자금대출 증가세가 심상찮다. 전세자금대출 규모를 별도로 집계하기 시작한 지난해 7월 이후 매월 2조원이 넘는 신규 대출이 발생했다. 올 2월부터는 월평균 3조원을 넘어섰다. ‘갭투자’(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입하는 것)를 막기 위해 전세자금대출 규제를 보다 강화했는데도 증가세가 꺾일 줄 모른다. 집값과 함께 상승한 전세 가격이 서민 지갑을 압박하며 대출 규모를 끌어올린 거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14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지난달까지 9개월간 은행권에서 지급된 신규 전세자금대출 총액은 23조8000억원에 달한다. 월평균 2조6000억원의 신규 대출이 발생했다. 같은 기간 은행권에서 집계한 신규 주택담보대출 총액(45조8000억원)의 52.0%를 차지했다. 내 집 마련을 위해 빌리는 돈보다 전세 목적의 대출 규모가 더 컸던 것이다.
투기 목적의 갭투자가 활황이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정부는 2018년에 발표한 ‘9·13 부동산대책’을 통해 갭투자로 악용되는 전세자금대출을 차단했다. 대책이 시행된 같은 해 10월부터 주택금융공사 등을 통한 전세자금대출 요건이 강화됐다. 부부합산소득이 1억원을 넘지 않고 시가 9억원 이하인 1주택 소유자에게만 금리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공적 보증을 허용했다. 1주택 소유자라도 시가가 9억원을 초과한다면 전세자금대출이 제한된다. 다주택을 소유한 이들은 아예 전세자금대출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설계했다.
전세자금대출 규제가 최근 더 강화됐다는 점도 갭투자 증가를 이유로 꼽기 힘들게 만든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추가 부동산대책을 통해 전세자금대출 규제를 보다 강화했다. 시가 9억원 초과 주택을 매입하거나 다주택자일 경우 즉시 전세자금대출을 회수하는 대책 등을 추가했다. 하지만 증가세는 되레 가팔라졌다. 지난 2월과 3월 신규 전세자금대출은 각각 3조7000억원, 3조원을 기록했다.
때문에 전세 실수요가 늘어난 탓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목돈을 주고 집을 사는 것보다는 전세를 선호하는 현상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집값이 끌어올린 전세가격 상승과도 무관하지 않다. 한국감정원이 월별로 발표하는 ‘아파트 전세가격 지수’를 보면 전세가격은 지난해 9월 94.6을 기록한 이후 지난달(96.4)까지 6개월 연속 상승했다. 서울 강남 3구를 중심으로 수도권 집값이 요동쳤던 시기와 맞물린다.
강력한 규제 속에서도 실수요가 늘다 보니 흘려 듣기 힘든 사례도 나온다. 서울 구로구에 사는 A씨(42)는 2018년 결혼했지만 아직 혼인 신고를 못했다. 전세가격 2억7000만원인 신혼집을 얻으며 받은 1억원의 전세자금대출이 발목을 잡았다. 맞벌이인 A씨와 배우자 모두 각각의 부모가 거주하고 있는 집에 명의가 올라가 있다. 경제 활동을 하지 않아 대출이 힘든 부모 대신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려다 보니 벌어진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A씨가 혼인 신고를 하게 되면 ‘부부합산’이 되면서 다주택자가 된다. 현행 규제대로라면 즉시 1억원을 갚아야 하는 부담이 있다.
일각에서는 갭투자를 방지하면서도 실수요자인 서민들을 고려한 전세자금대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악용 우려가 있는 만큼 예외를 두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