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찔끔 감산에 정유사 ‘ㅠㅠ’

입력 2020-04-14 04:08

극적으로 원유 감산 합의가 이뤄졌지만 정유업계의 시름은 여전하다. 보관 공간 부족으로 정부 비축시설을 빌리는 상황에서 하루 970만 배럴 감산으로는 시장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워서다. 초과 공급에 수요 위축, 정제마진 악화 등 계속되는 악재에 1분기 정유업계 적자가 3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3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HS 마켓에 따르면 일일 석유 수요 감소량은 2000만 배럴로 추정된다. 지난 12일 OPEC+(석유수출국기구인 OPEC과 10개 주요 산유국 연대체)가 최종 합의한 일일 감산 970만 배럴은 수요 감소폭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이미 국내 정유사는 재고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가동률을 낮추는 데 이어 정부 비축기지 대여에 들어갔다. 지난 9일 한국석유공사는 국내 정유사들에 비축기지를 대여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SK에너지는 서산 석유 비축기지에 180만 배럴을 저장할 예정이다.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는 원유 및 석유제품 저장을 위해 정부와 세부 조율을 시작했다. 에쓰오일은 자체 보유 중인 저장기지로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석유공사가 보유 중인 비축시설 규모는 총 1억3600만 배럴로 이 중 현재 사용 가능한 시설은 약 4000만 배럴이다. 업계 관계자는 “석유는 계속 들어오고 제품은 계속 만들어지는데 저장할 공간이 없다”고 토로했다.

쌓이는 재고는 1분기 실적에도 악재로 작용했다. 원유가격이 1달러 하락하면 70억원의 재고평가 손실이 발생한다. 지난 2월 20일 배럴당 56달러를 기록했던 두바이유가 지난 9일 23달러까지 하락했다. 업계는 재고평가 손실 영향으로 1분기에만 3조원에 달하는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하나금융투자는 1분기 SK이노베이션의 영업적자가 1조800억원, 에쓰오일의 영업적자가 7887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양지환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현대오일뱅크의 1분기 영업적자가 4782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한승재 DB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GS칼텍스가 1분기 5840억원의 영업적자를 내 적자전환할 것으로 전망했다.

유가 급락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예상치 못한 수요 위축에 업계는 당황한 분위기다. 수요 위축이 감산에는 제한적으로 반영됐는데 코로나19 확산으로 수요는 점점 더 쪼그라들고 있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사그라들어도 단기간에 수요가 반등할 요인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