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는 남녀싸움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싸움”

입력 2020-04-14 04:02
사진=뉴시스

시인 최영미(사진)는 2018년 3월 23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성차별 성폭력 끝장문화제’ 연단에 올랐다. ‘문단 미투’의 도화선이 됐던 자신의 시 ‘괴물’을 사람들 앞에서 처음 낭독하는 자리. 당시 그는 낭독을 마치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저는 싸우려고 시를 쓴 게 아닙니다. 알리려고 썼습니다. 미투는 남성과 여성의 싸움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싸움입니다. …지금 이 싸움은 나중에 돌아보면 역사가 될 것입니다.”


이 같은 이야기는 최영미가 최근 발표한 산문집 ‘아무도 하지 못한 말’(해냄·표지)에 실려 있다. 그가 산문집을 출간한 것은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이후 9년 만이다. 2015년 7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SNS나 각종 매체에 썼던 글을 갈무리했다.

특히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많이 수록됐다. 그가 페이스북에 본격적으로 글을 올린 건 2016년 봄부터였다. “언니처럼 사람 만나지 않는 사람은 온라인으로라도 소통해야 한다”는 친한 동생의 닦달이 그를 SNS의 세계로 이끌었다. 실제로 그는 페이스북에 글을 쓰면서 편안함을 느꼈다. 최영미는 “페이스북이 소화제보다 몸에 좋다”고, “누군가와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아무도 하지 못한 말’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후반부에 실린, 여성들에게 연대와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부분이다. 그는 “성폭력이 구시대의 유물로 남기를 바란다”고 썼고, “우리 같이 한번 바꿔봅시다”라고 적었다. 등단 이전에 “운동권 여성”으로 살면서 보고 듣고 겪은 성추행 경험을 전하기도 한다. “선배, 동지, 남편이라는 이름의 그들에게 유린당하고 짓밟히면서도 여성들은 침묵했다. 침묵을 강요당했다. 대의를 위해서. 민주주의? 자유? 평등? 혁명? 내 앞에서 지금 그런 거룩한 단어들을 내뱉지 마시길.”

책에는 최영미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도 비중 있게 실려 있다. 그는 첫머리에 담긴 ‘작가의 말’에 이렇게 적어두었다. “나의 가장 밑바닥, 뜨거운 분노와 슬픔, 출렁이던 기쁨의 순간들을 기록한, 시시하고 소소하나 무언가를 만들어냈던 시대의 일기로 읽히기 바란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