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초유의 사태가 지속되는 가운데 총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그 와중에 긴급재난지원금 정책에 관한 논쟁을 바라보며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몇몇 지방자치단체장이 화두를 던진 뒤 한 달 남짓한 기간에 지원금 대상, 규모, 방식 등에 관한 진지한 논쟁이 이어지는 듯 보였다. 초기에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던 정부와 여당에서 ‘싸우기 직전까지’ 갈 정도의 격론을 통해 발표된 해당 정책에 대해 한 편에서는 매표 포퓰리즘이라 비판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보다 적극적이고 형평성 있는 방안을 요구할 때까지만 해도 각기 나름대로의 논리와 근거를 가지고 의견을 개진하는 양상을 보여줬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총선을 앞둔 마지막 주말, 언론에 보도된 각 정당의 긴급재난지원금에 관한 공약을 살펴보면 세부 내용에 대한 이견을 제외하고 공히 지급 대상을 모든 국민으로 확대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소모적 논쟁을 피하기 위한 정치권의 과감한 결단이라고 치부하고 싶지만, 그보다는 절반 이상의 유권자가 지원 대상을 전 국민으로 확대하는 것에 찬성한다는 최근 한 여론조사 결과가 이룩한 쾌거로 보인다.
긴급한 사안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면 논쟁을 언제까지 이어나갈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시급한 정책 대응이 요구될수록 더더욱 효율적인 방안을 강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애초의 기본 취지와 목적을 상기한다면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는 재난지원금 정책은 결코 올바른 선택이 될 수 없다. 하나하나 따져볼수록 자명해지는 이치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확산됨에 따라 국내 소비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소상공인 및 영세 자영업자에게 경제적 타격이 집중됐다. 그 여파로 일자리를 잃은 일용직 근로자를 포함한 취약계층은 당장 하루하루가 막막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이들에 대한 직접적인 소득지원 대책의 일환으로 처음 논의되기 시작했다. 기본 취지에 충실할 경우 현금이든 지역화폐든 지급 방식에 대한 논의는 큰 의미가 없다. 어차피 생계를 위한 식품 및 생필품 등에 대한 소비지출로 바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필요에 따라 몇 번이고 지급돼야 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기대되는 지역 상권 소비 진작은 덤이다. 바로 재정지출의 승수효과가 발현될 수 있는 경로다.
반면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의 직격탄을 피할 수 있었던 계층들은 소득이 줄었기 때문이 아니라 소비심리가 위축된 한편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면서 소비지출을 줄이게 됐다. 그들에게 지급되는 재난지원금이 당장 소비 진작으로 이어질 수 없는 이유다. 그나마 지역화폐 및 상품권으로 지급될 경우 은행 계좌에 고스란히 남겨질 현금보다는 낫겠지만 이 역시 현금이나 카드로 지출하던 기존 소비활동을 상품권으로 대체하는 정도에 그치고 말 것이다. 상품권을 현금으로 할인하는 다양한 편법을 완벽하게 차단하더라도 그렇다.
각계 전문가가 포진한 각 정당에서 이렇게 자명한 사실을 모르고 공약을 결정했을 리 만무하기에 기분이 언짢아진다. 우리의 시민의식은 이미 충분히 성숙해 있다. 피해 지역 주민들을 위해 국고 지원금이 지급될 때 추가적인 의연금 모금에 동참하는 것이 우리 국민들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이 한낱 공짜에 환호하는 부류로 매도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조차 모르는 어리석은 부류로 말이다.
안재빈 (서울대 교수·국제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