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기본합의서의 주역이자 한국외대 밀가루 봉변 사건의 피해자로도 잘 알려진 정원식(사진) 전 국무총리가 12일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정 전 총리는 3개월 전부터 신부전증으로 투병해오다 이날 오전 10시쯤 숨을 거뒀다고 유족 측이 전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정 전 총리는 일제강점기인 1928년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1954년 서울대 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1962년부터 모교의 조교수로 교편을 잡았다. 노태우정부는 1988년 2월 그를 방송심의위원장으로 선임한 데 이어 그해 12월 문교부 장관으로 발탁했다. 이듬해 5월 노태우정부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불법 단체로 선포하자 정 전 총리는 전교조에 관여한 인사를 해임하는 등 강경 조치를 취했다.
정 전 총리는 1990년 문교부 장관에서 물러나 한국외대, 덕성여대 등에서 겸임교수로 출강하다 1991년 5월 국무총리 서리로 임명됐다. 총리 취임을 앞둔 그해 6월 3일 한국외대에서 마지막 강의를 마치고 나서던 중 운동권 학생들로부터 봉변을 당했다. 정 전 총리가 온몸에 밀가루와 계란을 뒤집어쓰고 황급히 학교를 빠져나가는 모습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대학 운동권에 대한 여론이 급속히 악화됐다.
정 전 총리는 총리 재임 중 남북 관계에서 업적을 쌓았다. 1991~92년 남북 고위급 회담 수석대표로서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등 굵직한 합의를 도출했다. 모든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보수 성향 원로 교육학자들과 주로 교류해 왔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