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코로나와 공존하는 시대

입력 2020-04-13 04:03

아이들이 집에만 갇혀 지내다시피 하니 평소 못 보던 모습을 마주한다. 얼마 전에는 아이들 입에서 트로트가 흘러나왔다. “아이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 가슴 시린 보릿고개 길~”. 한 종편 채널의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을 봤다고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입학도 못하고 있는 여덟 살짜리 입에서 ‘보릿고개’가 튀어나오니 헛웃음이 나왔다.

나 자신도 보릿고개를 경험하지 못했지만, 주위에선 작금의 상황을 ‘코로나 보릿고개’에 빗댄다. 코로나19로 감내해야 할 경제적 피해가 만만치 않다는 의미다. 정부와 주요 기관들이 내놓는 자료에는 ‘경기 회복 여부는 코로나19의 확산 정도에 달려 있다’는 전제가 꼬리표처럼 붙어 있다. 코로나19의 불확실성 때문에 피해가 얼마나 커질지, 또 언제까지 이어질지 가늠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보릿고개 앞에 짙은 안개가 드리운 격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세계 불확실성지수(WUI)는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베트남 전쟁이나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당시보다도 높다. 이렇다보니 경기 전망은 제각각이다. ‘V자’ 급반등부터 완만한 ‘U자’ 반등, ‘나이키형’ 느린 반등, ‘L자’ 침체까지 그럴듯한 전망은 죄다 나왔다. 마치 ‘불확실성의 늪’에 빠져 있는 것 같다.

불확실성은 여전한데, 세상은 ‘코로나 뉴노멀’로 빠르게 향하고 있다. 코로나19가 바꿔놓은 새로운 생활 표준 같은 것들이다. 언택트(Untact·비접촉) 문화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면서 재택·유연근무가 퍼져나가고 있다. 온라인·디지털 교육과 ‘집콕’ 여가도 점점 늘어난다. 시각을 넓혀보면 ‘글로벌리제이션(Globalization·세계화)의 쇠퇴’도 관측된다. 박상기 숭실대 겸임교수는 최근 한 기고문에서 “광범위한 국제 분업을 통해 형성된 글로벌 공급망이 국가안보 차원에서 선택적 자급자족 등의 방식으로 재편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불확실성의 늪에서 뉴노멀을 따라야 하는 일상은 스트레스다. 이미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수입이 곤두박질치고, 실업자는 계속 늘고 있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유럽의 일부 국가들은 경제활동 재개를 선포하고 있다. 한 달 전쯤 코로나19 확진자 폭증으로 지탄의 대상이 됐던 이탈리아는 오는 15일부터 일부 산업의 생산 활동을 재개한다.

이탈리아가 경제활동 재개를 결정하면서 전제로 삼은 것은 ‘바이러스와의 공존’이다. 바이러스는 사라지지 않을 뿐더러 2차 팬데믹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십분 고려하면서 내린 결단이다. 섣부른 판단인지 여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많은 나라들이 결국 비슷한 길을 걷게 되지 않을까. 우리도 조만간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 방역으로 대응체계가 바뀔 것이다. 확진자가 전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바이러스와의 공존’을 떠올려보는 것도 과도한 공포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이자 빌&멀린다재단 이사장인 빌 게이츠는 최근 기고문에서 “미증유의 팬데믹 상황에서 세계 인류는 운명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우리의 대응도 여기에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이나 국가 차원이 아니라 인류가 함께 이겨나가야 할 과제라는 것이다. 아이들이 따라하는 트로트 중엔 “일년 삼백육십오일 동안 우린 멋진 파트너야”라는 가사가 나온다. 남진이 부른 ‘파트너’란 곡이다. 코로나가 파 놓은 불확실성의 늪을 헤쳐나오고, 보릿고개를 넘는 것도 혼자가 아닌 함께 해나가야 할 몫이라는 데 모두가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

박재찬 경제부 차장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