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사석에서 사퇴 의사를 밝혔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재임 기간 각종 긴장과 갈등이 불거지는 데 당혹감을 표출했다는 것이다. 해리스 대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기조를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전임 대사들과 달리 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주한 미국대사관은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싶다는 해리스 대사의 의지에 변함이 없다며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해리스 대사가 사석에서 오는 11월 미국 대선 이후까지 현 직책을 유지하고 싶지는 않다는 뜻을 피력했다고 로이터통신이 9일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임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대사직에서 물러나겠다는 것이다. 사정을 잘 아는 소식통은 로이터에 “해리스 대사는 트럼프 대통령 재선 후 출범하는 2기 행정부에서 일하느니 차라리 11월까지만 (대사직을) 유지하고 싶어했다”고 전했다.
해리스 대사는 전임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와 비교해 직무 수행이 순탄치 않았다는 평가가 많다. 해리스 대사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과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 등 현안을 두고 강경 발언을 쏟아내면서 ‘주권 침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한국 정치인과 만난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종북좌파에게 둘러싸여 있다”고 말하는가 하면 “한국 측이 방위비분담금으로 50억 달러를 지불해야 한다”고 반복해 강조하면서 외교관답지 않은 대사라는 평가도 들었다. 해군 4성 장군으로 비외교관 출신인 그의 이력도 함께 주목을 받았다.
로이터에 따르면 일부에서 일본계 혈통을 문제 삼으며 그의 콧수염을 ‘일제 총독’에 비유하며 조롱했다고 한다. 한 소식통은 로이터에 “해리스 대사가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공개적으로 말할 사람은 아니다”면서도 “인종주의적 모욕은 동맹국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군 복무 시절 태평양사령관을 지냈던 해리스 대사가 한·미동맹을 경시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에 불만을 품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이 한국에 과도한 방위비 분담금을 요구하며 외교적 갈등이 빚어진 데 대해 주한 미국대사로서 회의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한 미국대사관 측은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대사관 대변인은 “해리스 대사는 대통령의 뜻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미국을 위해 지속적으로 적극 봉사할 것”이라며 “해리스 대사는 평소 ‘한국은 미국대사로서 최고의 근무지이자 미국에 최고의 동반자이자 동맹’이라고 말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 당국자와 국민, 언론과 소통하며 동맹 강화에 일조하겠다는 대사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해리스 대사는 로이터 보도 직후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이라며 대사관저에서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과 멀리 떨어져 앉아 점심을 먹는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