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져도 올라도 ‘버티기’… 아파트 강남불패 또 시험대

입력 2020-04-10 05:05

고가주택 아파트 보유자들이 아파트를 팔지 않고 ‘버티기’를 시작한 정황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공시가격 인상에 대한 불만이 최고조로 치솟고 있는데도 대대적으로 주택을 처분할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한편에선 전셋값이 치솟지만 급하게 매물을 찾는 움직임도 보기 힘들다. ‘강남 불패’에 대한 믿음과 서울 아파트값 급락에 대한 기대심리가 힘겨루기 하는 모양새다.

직방은 3월 한 달간 애플리케이션 사용자 1470명을 대상으로 ‘국토교통부의 2020년 공동주택 공시가격안’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를 9일 발표했다. 이 중 공동주택 보유 응답자 823명에게 올해 공시가격 발표 후 매도를 고려했느냐고 질문한 결과 286명(34.8%)이 ‘고려했다’고 답했고, 나머지 537명(65.2%)은 ‘그대로 보유하겠다’고 답했다.

다주택자들은 지난 8일 마무리된 올해 공시가격 이의신청에서 2만건에 육박하는 이의를 제기할 정도로 불만이 크다. 정부가 올해 공시가격 현실화 방침을 밝히면서 세 부담도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금을 피하기 위해 아파트를 내놓는 경우는 생각보다 적었다.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강남 아파트는 언젠가 다시 오른다는 ‘강남 불패’에 대한 믿음이 여전히 팽배하다.

고가아파트 보유자들의 버티기 정황은 설문 세부항목에서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조사에서 매도를 고려하는 공동주택의 매물 가격대는 ‘3억원 미만’이 35%로 가장 많았다. 이어 3억원 이상~6억원 미만(26.2%), 6억원 이상~9억원 미만(17.8%) 순으로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낮은 아파트를 매도하겠다는 움직임이 더 컸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자산 중 부동산은 가장 늦게 처분하는 편”이라며 “당장 주택을 처분해야 할 정도로 세금 부담이 크거나 주택가격이 폭락한 상황은 아니라서 매도 시점을 여유 있게 잡은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매도를 고려한다고 응답한 경우 그 시점을 ‘내년 이후’라고 답한 경우가 49%로 가장 많았다. 이어 2분기(28.7%) 3분기(13.3%) 4분기(9.1%) 순이었다.


매수 수요도 급격히 줄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실제로 서울 강북 아파트 매매가격이 40주 만에 보합세에 접어들고 경기도 지역은 매매가격지수가 지난주 0.19%에서 0.17%로, 인천은 0.34%에서 0.29%로 성장세가 꺾였다. 감정원은 코로나19와 정부 규제 등으로 이 지역 거래가 위축된 탓으로 분석했다.

매매가 급격히 줄면서 반사 효과로 전셋값도 오르고 있다. 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지난달 4억6070만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7월에는 전셋값 평균이 4억3908원이었는데 매달 꾸준히 올라 4억6000만원대를 넘어섰다. 특히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의 전셋값 평균은 6억6797만원에 달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집을 안 사게 되는 원인은 다양하지만 보유세 인상 등 정부 부동산 규제도 큰 영향을 줬다”며 “집을 살 수 있음에도 안 사는 사람들이 많으면 주택 공급량이 늘어도 전셋값이 안정되긴 힘들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악화한 글로벌 경제야말로 국내 부동산 규제보다 훨씬 큰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코로나19 문제가 당장 해결된다면 전셋값이 계속 오를 수 있겠지만 사태가 지속되면서 국내 경제에 악영향을 주면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