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운영자가 검거됐지만, 처벌 수단과 재발 방지 대책은 미비한 실정이다. n번방은 ‘박사’ 닉네임을 쓰던 조주빈 등이 피해 여성들의 개인정보를 빼낸 후 이를 빌미로 피해자 스스로 나체 사진과 영상물을 촬영하도록 협박, 이를 익명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돈을 받고 판매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다.
지난달 5일 ‘n번방 방지법’이자 ‘국민청원 1호법’으로 불린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됐다. 개정안 통과는 지난 1월15일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디지털성범죄 해결에 관한 청원’이 10만 명의 동의를 얻은 것을 계기로 추진됐다. 문제는 개정안에 ‘구멍’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개정안에서 디지털 성범죄 관련 내용은 “특정 인물의 신체 등을 대상으로 한 영상물 등을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형태로 편집해 제작·반포하는 행위인 딥페이크 영상물 제작자를 처벌하고, 이를 영리 목적으로 반포한 자는 가중처벌한다”는 조항뿐이다. 당초 청원에는 ▲경찰 국제공조 근거 마련 ▲수사기관 내 디지털성범죄전담부서 신설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 강화 등의 요청이 있었다.
때문에 현행법으로는 n번방 운영자의 엄중 처벌이 요원하다. 영상물 제작·유포·소지를 모두 처벌하는 조항은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는다. n번방 피해자의 대다수가 성인이고, 텔레그램에서는 영상물을 다운로드하지 않고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은 법조항과 충돌한다. 즉, 법조항에 따른 제작·유포·소지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 또 불법촬영, 불법촬영물 반포 등의 혐의도 n번방 운영자의 범행을 처벌하는데 한계가 존재한다. n번방 운영자는 피해자가 영상을 스스로 촬영·전송하도록 협박했지만 직접 촬영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n번방 운영자들의 범죄 요건을 입증키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법 개정도 하세월이다. 백혜련·박광온·송희경 의원 등이 대표발의한 디지털 성범죄 예방·처벌 관련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다. 법안 처리 시점은 4·15 국회의원 총선거 이후인 5월로 미뤄진 상태다.
지난달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은 디지털 성범죄 대응 민·관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제2차 디지털 성범죄 종합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밝혔지만, 대책이 언제 나올지는 알 수 없다. 여가부는 ‘조금 더 기다려 달라’고 해명했다. 권익지원과 관계자는 “국무조정실에 디지털 성범죄 범부처 대응팀이 꾸려지면서 여가부 차원의 특별위원회는 조직되지 않았다”며 “2차 종합대책은 관계부처가 방향을 논의 중에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구체적 활동 계획, 종합대책의 확정안 등이 나오는 시기는 알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한성주 쿠키뉴스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n번방’ 운영자 강력처벌 목소리 높지만 현행법선 한계… 재발 대책은 검토 중
입력 2020-04-12 18:50 수정 2020-04-13 1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