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형 증권사들이 신용등급 강등 위기에 직면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증시가 크게 출렁이며 주가연계증권(ELS) 운용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데다 해외 부동산 등 대체투자 자산까지 부실 징후를 보이고 있어서다. 개미(개인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주식 투자에 몰려든 상황에서 정작 증권사들이 불확실성에 휘말린 상황이다.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국내 6대 증권사의 신용등급 하향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미래에셋대우와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신한금융투자 등 6대 증권사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하향조정 검토’로 바꿨다. 이들 증권사는 지난해 말 별도 재무제표 기준으로 자기자본 4조원을 넘긴 초대형 투자은행(IB)이다. 무디스가 국내 대형 증권사의 신용등급 전반을 경고한 건 이례적인 일이다.
무디스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가 증권사들의 수익성과 자본 적정성, 자금조달과 유동성을 압박할 것”이라며 “자산 가격의 급격한 조정이 한국 증권사의 수익성과 이익을 상당히 약화시킬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무디스는 최근 국내 은행업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춘 바 있다.
실제 국내 증권사들의 올 1분기 실적 전망은 암울하다. 메리츠종금증권은 미래에셋대우와 한국금융지주(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삼성증권, 키움증권 등 5개 증권사의 합산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83.1%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고은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증시 폭락으로 ELS 관련 평가 손실이 발생한 점이 손익 악화의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정태준 유안타증권 연구원도 “1분기에 순손실을 기록하는 증권사가 나오는 등 실적 대폭 하락이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증권사들이 수년간 경쟁적으로 나섰던 해외 부동산 투자도 위험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미래에셋그룹은 지난해 9월 중국 안방(安邦)보험이 보유한 미국 고급호텔 15곳을 58억 달러(약 6조90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삼성증권과 KB증권 등도 미국과 유럽 지역의 빌딩, 물류창고 등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 왔다. 그러나 코로나19 여파로 해외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국내 증권사들은 인수한 해외 부동산을 펀드 등에 재매각(셀다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의 해외 부동산 투자 펀드 설정액은 3월 말 기준 54조7935억원에 달한다. 2015년 말(11조2779억원)보다 4.9배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한국신용평가가 추산한 국내 증권사들의 해외 부동산 투자 익스포저(위험 노출) 금액은 지난해 6월 말 기준 8조원에 달한다. 무디스는 “대체 투자에 나선 증권사들의 재매각에 차질이 발생한다면 자산평가 손실 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양민철 조민아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