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남동생, ‘원수 사랑’ 훈련 통해 용서

입력 2020-04-10 00:04
새가족부를 섬기는 한명숙 집사가 교통부에서 봉사하는 남편과 지난달 예배를 마치고 함께했다.

저는 서울 수색에서 태어났습니다. 동네는 온통 굿판이었고 어머니 역시 신내림을 받고 작두에 올라서기도 했습니다. 주변은 술주정뱅이와 건달들이 득실대는 곳이어서 누가 어디 사느냐고 물어보면 다른 동네 이름을 대곤 했습니다. 어쩌다 집에 오시는 아버지는 술에 취해 엄마와 우리 6남매를 폭행했습니다.

어디 가서 기 한번 못 펴고 살던 저는 스물한 살 때 남편을 만났습니다. 남편은 어릴 적 동화에서 읽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았습니다. 돈 잘 버는 남편 덕에 마음껏 치장하고 남들에게도 후하게 인심 쓰며 살았습니다. 타인의 시선이 항상 신경 쓰여 화장을 안 하고는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지도 않았습니다.

친구가 없던 저는 학교 엄마들과 낮술을 즐기며 살았습니다. 항상 풍족할 것 같았지만 2010년 8월 경기도 파주 운정신도시로 이사 오면서 불행이 시작됐습니다.

남편의 사업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친정 남동생의 배신은 우리 가정을 송두리째 무너뜨렸습니다. 정말 술 없인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베란다에 나가 뛰어내릴 생각도 여러 번 했습니다. 남동생을 죽일 생각을 하면서 마음속 깊은 병이 들었습니다.

빚쟁이가 찾아올까봐 청소기도 못 돌리고 텔레비전은 소리 없이 자막으로 보면서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2012년 5월 우리 가족은 결국 빈 몸으로 쫓기듯 나왔습니다. 남편 사무실에 딸린 방 한 칸을 수리해 네 식구가 살았습니다. 지하라 습기와 곰팡이가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그때 상가 1층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집사님을 통해 순복음삼마교회에 나오게 됐습니다. 찬양 소리가 예배당에서 들리자 나도 모르게 설움에 북받쳐 눈물이 터졌습니다. 태어나서 “할렐루야” 소리가 그렇게 좋은지도 처음 알게 됐습니다.

이일성 목사님이 ‘원수 사랑’을 말씀하실 때마다 용서하지 못한 동생이 떠올라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남동생을 용서하게 해달라고, 용서했다고 기도했지만 동생 얼굴을 생각만 해도 심장이 벌렁거리고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기 위해 남동생을 사용하셨다는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진심으로 회개했습니다. 그날 이후 원수 같던 동생이 불쌍해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저로 인해 상처받았을 그 아이를 살펴달라고 하나님께 애원했습니다. 진심으로 회개했을 때 그 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2017년 1월 남편이 교회에 나오고 얼마 안 돼 한 달이 다 되도록 일이 끊긴 적이 있었습니다. 아직 하나님 말씀을 잘 모르는 남편이 하나님을 원망할 것 같아 기도를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예배 때 찬양하는 모습을 보고 남편이 말했습니다.

“명숙아. 행복해. 그렇게 좋아?” “여보 당신 힘든 거 알아. 근데 그건 우리가 신경 쓴다고 되는 게 아니야…. 힘들수록 기도하고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 거래. 당신만 안 힘들면 나는 좋아.” “당신이 이렇게 기뻐하고 즐거워서 감사해.”

이제 우리 부부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으며 살고 있습니다. 요즘은 주보와 삶은 밤을 건네며 노방전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거 제가 산에서 주운 건데요, 예수님 믿고 천국 가세요.” 옷이 땀으로 흠뻑 젖을 정도로 전도지를 모두 돌리고 교회로 달려가면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내 인생에서 모세오경 훈련을 통해 복음을 알지 못했다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했다면 어쩔 뻔했을까 아찔하기만 합니다. 하나님께선 많은 소망을 주셨습니다. 종류별로 꽂혀 있는 헌금 봉투를 보면서 적게라도 다 드리고 싶습니다. 수요예배 후 힘든 걸음으로 돌아가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봉고차를 사서 예배 때 픽업하러 가고 싶습니다. 교회 일에 우리 부부가 동참하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날마다 샘솟고 있습니다.

한명숙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