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소리 나는 항공사, 코로나 때문인가 구조적 문제인가

입력 2020-04-09 04:01
코로나19 여파로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대한항공이 6개월간 전 직원 70% 순환 유급휴직 결정을 내린 가운데 8일 인천공항 주기장과 이동로에 운항하지 못해 멈춰선 대한항공 소속 비행기들이 줄지어 서 있다. 영종도=윤성호 기자

코로나19 여파로 ‘줄도산 위기’에 처한 항공산업 지원 규모를 두고 정부와 업계의 시각차가 여전하다.

저비용항공사(LCC)에 대한 3000억원 지원책에 대해 항공업계는 “규모가 너무 작고 대형항공사의 지원은 빠져 있다”며 추가 지원을 요구한다. 반면 정부는 “항공기 리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부채비율이 원래 크다. 자본 확충, 경영 개선 등 종합적 노력이 우선 필요하다”며 무조건적인 지원에 신중한 입장이다.

실제 업계 안팎에선 현재 항공산업의 위기가 감염병 확산에 따른 일시적 문제인지, 현금이 부족한 항공사 난립에 따른 구조적 문제인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제기되고 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전 이미 항공업계가 포화상태였다고 본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2017년 전후 항공산업이 크게 수익을 내면서 ‘비행기를 띄우기만 하면 돈이 된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며 “2018년 이후 7곳 항공사들이 출혈경쟁을 하기 시작했고 지난해엔 새로운 사업자들도 지역 정치권과 결합해 국토교통부로부터 항공 면허를 받아냈다”고 설명했다.

황 교수가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 공개한 20개국의 국내총생산(GDP), 1인당 출국자 수, 1인당 항공운송객 수 등을 지난해 말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의 경우 대형항공사 1곳, LCC 3.5개 정도가 적정하다고 밝혔다.

황 교수는 “대형항공사 2곳, LCC 8곳이 넘는 국내 항공업계는 과잉경쟁 상태”라고 진단했다. 실제 지난해 사상 최대 여객 수(1억2336만명)를 기록했는데도 국내 항공사 8곳이 모두 적자를 내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노재팬운동과 코로나19가 겹치면서 항공업계의 열악한 재무상태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는 “유류비, 항공기 리스비용 등 고정비용이 큰 항공산업은 현금 전환이 빨라 돈줄이 막히기 시작하면 금방 망한다”며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지난달부터 이미 ‘정부가 지원을 하지 않으면 전 세계 항공사가 두 달 안에 모두 망한다’는 전망이 나왔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항공사 피해 규모를 파악해 감염병 직전 재무상태까지 회복시켜야 한다고 제언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항공업계가 적자였던 건 맞지만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것도 사실”이라며 “지금은 누구 탓도 아닌 재난으로 인한 피해여서 정부가 지금보다 지원을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허 교수도 “이대로라면 대형항공사까지 모두 도산한다”며 “기간산업 보호 차원에서 싱가포르, 미국 등 다른 나라의 지원 규모만큼은 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시적인 위기만 면하게 해주면 이후엔 항공업계가 시장 논리에 따라 다시 재편돼 균형을 찾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 판단이다.

전문가들은 구제금융 총액을 정해놓고 각 사에 나눠주는 식의 현재 지원책은 세밀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 확산 이전과 이후 수익 변화를 항공사별로 파악해 피해 규모에 맞는 지원을 해야 한다”며 “코로나19 이전 이미 자본잠식에 빠져 있던 기업까지 모두 도와줄 순 없다”고 강조했다.

한재현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의 9·11 테러 당시 항공사 지원책을 보면 항공업계 전부를 지원해주는 게 아니라 전문위원회를 꾸려 테러 이전의 경쟁력과 재무구조를 따져 선별 지원했다”며 “국내 항공사 역시 자구노력과 경쟁력 등을 따져 지원 규모를 엄정하게 가려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