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부터 가족 손에 이끌려 간 그곳이 이단 집단이었단 걸 안 건 탈퇴하고 나서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습니다. 그만큼 교리 세뇌가 무섭습니다.”
6살 때부터 이모의 권유로 어머니와 함께 기독교복음선교회(JMS·교주 정명석) 집회에 참석해왔다는 강모(25·여)씨의 고백이다. JMS는 잘못된 구원론 등으로 한국교회 주요 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한 사이비종교 집단이다.
역시 이단인 만민중앙교회(당회장 이재록)에 가족과 함께 다닌 윤모(24)씨도 “태어나 눈 떠보니 만민이었다. 이재록 기도가 녹음된 걸 매일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재록(77)과 만민중앙교회는 이단적 설교를 이유로 1990년 5월 예수교대한성결교회 총회를 시작으로 여러 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됐다.
두 사람 모두 이단인 줄도 모른 채 부모 손에 이끌려 사이비종교 생활을 해온 ‘이단 2세’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자라면서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방황하게 된다. 이들이 겪은 이단의 실상과 폐해를 최근 서면 인터뷰를 통해 들어봤다.
강씨는 JMS에서 ‘목사’로 있던 이모가 그의 모친을 전도하며 JMS에 빠졌다. 고등학교 1학년 때 JMS 지도부의 감시와 감금에 못 이겨 모친과 함께 탈퇴했다. 강씨는 초등학생 때부터 JMS 행사 진행 아나운서나 밴드부원으로서 거리 공연 포교 활동에 나설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해왔다. 집에는 방마다 정명석(75)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거실 소파에는 좋은 방석과 함께 ‘정명석의 영’이 앉을 자리까지 만들어 놨다.
강씨는 중학교 3학년 때 남자친구와 사귄다는 이유로 지도부로부터 3일간 금식과 회개 편지 작성을 강요받았다. ‘계시자’라 불리는 일부 지도부 측 사람들이 미성년자인 그의 배를 만지며 ‘타락(성관계)했다’ ‘너는 지금 당장 남자랑 뒹굴 수 있는 애다’란 식의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모와 어머니는 강씨를 학교에서 자퇴시킨 후 지도부들과 함께 살게 했다. 24시간 감시당하는 삶을 살던 그는 이모가 수요집회에 간 사이 짐을 싸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얼마 뒤 그의 어머니도 JMS를 탈퇴했다. 강씨는 3년 후 성인이 돼서야 그곳이 이단·사이비 집단이었음을 인터넷으로 알게 됐다.
윤씨는 만민중앙교회가 이성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마저 간음이라 단죄했기에 이성과 정상적 친구관계를 맺거나 사회생활을 하는 게 어려웠다. 그뿐만 아니라 매일 밤 9시부터 11시 30분까지 진행되는 기도회에 빠짐없이 출석해야 했기에 학업에도 지장이 컸다.
윤씨는 “소위 세상 것을 버리고 오직 교회에 나와 충성하고 기도하는 것이 복된 것이라 강조했기에 또래 친구와 노는 것은 감히 할 수도 없었다”며 “점점 친구들과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 좁아져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JMS 교주 정명석과 만민중앙교회 교주 이재록은 모두 여신도들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해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성범죄자다. 정명석은 대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이 확정돼 복역하다 만기 출소했고 이재록은 징역 16년이 확정돼 복역 중이다. 조직 내부에선 신도들이 이런 사건에 흔들리지 않게 철저하게 통제한다. 관련 정보를 접하는 것 자체를 죄악시하는 것이다.
윤씨는 “2세들은 어릴 때부터 지옥과 관련된 내용을 세뇌당하듯 교육받아 혹시나 벌을 받을까 두려워 쉽게 관련 정보를 찾아보지 못한다”고 말했다. 강씨도 “어릴 때부터 JMS 집단 문화 속에 자라왔기 때문에 이상한 곳인 줄 몰랐다”면서 “교리에 세뇌된 상태라 탈퇴하고 나서도 이단인 줄 몰랐다. 그만큼 이단·사이비의 세뇌가 무섭다. 이젠 정통 종교를 갖는 것도 겁이 난다”고 말했다.
강씨는 지금도 탈퇴를 고민하는 2세들로부터 연락이 꾸준히 온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 부모까지 빠져있는 상태라 가족과의 인연을 끊지 않는 한 탈퇴가 쉽지 않다. 탈퇴하면 3년 안에 망한다느니 지옥불에 떨어진다느니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말하며 겁을 주는 교리에 세뇌된 탓도 있다. 강씨는 절대 그렇지 않다며 지금이라도 한 발자국만 떼어 나와보라고 조언한다.
탁지원 현대종교 소장은 “2세들은 소속 집단 사람들과 오랜 시간 끈끈한 관계를 맺어온 데다 그곳을 떠나면 가족관계가 단절되고 지옥에 간다는 두려움이 강해 탈퇴가 어렵다”면서 “어린 시절부터 각인된 교리를 벗어나는 게 혼란스럽고 고통스럽겠지만, 자신이 속한 곳이 왜 이단이라 불리는지 정통교회의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들어보고 새 옷을 입는 용기를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국교회는 이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탁 소장은 “우리 자녀를 생각하는 마음의 100분의 1만이라도 모태 이단이라 불리는 2세들의 회복과 치유를 위해 기도해달라”면서 “영적 전쟁도 중요하고 경계와 예방도 중요하지만, 이단에 속한 이들의 회복도 중히 여기는 한국교회가 되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