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사회를 영원히 바꿔놓기도 한다. 지금 세계가 경험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은 최근 몇 십년간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충격으로 우리의 일상과 문화, 경제활동, 민주주의 등을 뒤흔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겠지만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도 바이러스는 결국 힘을 잃을 것이고, 지구촌은 일상을 되찾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의 세계가 그 이전과 같을 수는 없다.
권위주의 정부의 득세 경고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세계 각국은 여러 가지 강제 조치를 취하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조차 위기 대응을 이유로 정부가 개인이나 기업의 자유를 ‘합법적으로’ 침해하는 중이다.
최근 미국의 칼럼니스트 브렛 스티븐스는 5년 후 지금을 돌아본다는 가정 아래 뉴욕타임스(NYT)에 ‘2025년의 회고’라는 기고문을 게재하고, 권위주의의 득세를 경고했다.
스티븐스는 “5년 전 코로나19가 보건 위기를 불러왔을 때 사람들은 정보를 조작하고 내부고발자를 탄압하는 권위주의 정부가 바이러스를 더 확산시킬 것이라고 봤다”며 “그러나 몇 달 후 그 반대 즉, 바이러스가 권위주의를 확산시키기도 한다는 사실도 명확해졌다”고 썼다. 그러면서 헝가리와 필리핀, 이스라엘의 독재 성향 지도자들이 코로나19 위기에 국민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인권을 유린하고 언론의 입을 막은 사례들을 나열했다.
스티븐스는 “일시적이라는 정부의 선전과 바이러스 확산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목표 때문에 그들의 전략은 대중의 저항을 거의 받지 않았다”면서 “봉쇄 조치가 길어지면서 정상화는 멀어졌다”고 덧붙였다.
영국 BBC는 안보에서 테러보다 바이러스가 더 중요한 주제로 떠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9·11 테러 이후 국가 안보의 주제는 테러리즘에 맞춰져 있었지만 최근 몇 년간 안보의 의미를 확장해야 하며 공중보건 문제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BBC는 정보기관 책임자가 최신 보고서를 들고 뛰어들어와 근심 가득한 정부 관계자들 앞에 내놓는다는 상황을 설정한 뒤 “과거에 그 보고서엔 중동 테러집단의 공격에 대한 내용이 있었겠지만, 미래에는 그 보고서에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발생한 바이러스와 해당 지역 정부가 그 사실을 숨긴 내용이 들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코로나19 위기는 디지털 기반의 초연결사회로 가는 중대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재택근무와 온라인 학습 등의 지속 가능성이 확인되면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될 위험을 무릅쓰고 굳이 대면 활동을 할 필요가 없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라는 뜻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이자 ‘대화를 잃어버린 사람들: 온라인 시대에 혁신적 마인드를 기르는 대화의 힘’ 저자인 셰리 터클은 “우리는 디지털 기기를 가지고 디지털 기기를 통해 생성할 수 있는 사회에 대해 생각하는 데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터클 교수는 “코로나19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던 시기의 초반에 우리는 영감을 주는 사례들을 발견했다”면서 “온라인 공간에 첼리스트 요요마는 매일 라이브 콘서트를 포스팅했고, 요가 강사들은 무료 수업을 제공했다. 우리는 타고난 능력을 기기에 적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상현실(VR) 등의 기술이 발전하면 학교나 회사에 가지 않고도 사람들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VR은 ‘다음 위기’에 우리를 안전하게 해줄 수 있다. 세계보건학자 엘리자베스 브래들리는 “VR 안경을 쓰면 교실 등 집 밖의 특정 장소로 순간이동할 수 있게 된다”면서 “자가격리 중인 사람의 사회활동이나 정신건강을 위해 VR 프로그램이 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전에 많은 사람이 필요성을 이야기하던 ‘디지털 디톡스’는 구시대 단어가 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TV와 노트북,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사회는 곧 디지털 기기를 빼면 마비되는 사회다. 다양한 디지털 기기를 통해 개인이 이전보다 시간을 더 의미있게 사용하는 ‘건강한 디지털 생활’은 코로나19가 가져올 꽤나 긍정적인 변화일지도 모른다.
오버투어리즘의 종말과 대도시 기피
연결된 세계에서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무서운 속도를 경험한 사람들이 대도시와 관광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면서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의 종말이 올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코로나19로 세계 주요 관광지가 폐쇄되면서 에어비앤비로 대표돼 온 ‘대도시 여행’ 트렌드가 앞으로 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매체는 “이미 중국에서는 여행 트렌드가 해외여행에서 국내여행으로 바뀌고 있다”며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 매년 200만명에 달하던 중국인 관광객이 사라지면 정부는 국내 관광을 활성화시키는 정책을 펴고, 그간 외국인 여행객들에게 주목받지 못했던 장소들이 내국인들에게 주목받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분석했다.
현대인들의 대도시 거주에 대한 선호도 재고될 수 있다. 코로나19는 밀라노, 뉴욕, 런던, 파리, 도쿄 등 대도시에서 집중적인 피해를 발생시켰다. 이탈리아에선 코로나19로 봉쇄령 이야기가 나오자 북부 도시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남부의 고향이나 휴양지로 이동했다. 프랑스에서도 정부의 이동제한령 발령일인 지난달 17일 직전 주말 파리와 리옹 등에 거주하던 부유층이 한적한 지방으로 몰려갔다. 이번 위기를 통해 재택근무가 지속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다면 그들은 계속 거기에 머무를 것이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