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왔다. 마커스 워십의 곡 ‘그가 오신 이유’였다. “그가 이 땅에 오신 이유 죽어야 살게 되고 져야만 승리하는 놀랍고 영원한 신비” 노래 가사가 찬찬히 박혔다. 노래가 끝나자 곧바로 라디오 시그널 느낌의 경쾌한 음악이 이어졌다. DJ의 오프닝 멘트가 뒤따랐다. 봄이 주제였다.
“봄이 왔습니다. 봄이 오긴 왔는데 여전히 그 봄을 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어서 봄이 되는 것입니다. 오는 봄이 아니라 되는 봄, 내 안에 꽃을 피워 봄이 되게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서부교회(임채영 목사)는 매주 화·목요일 밤 8시 유튜브를 통해 라디오 방송을 생중계한다. 형식을 라디오 방송으로 했을 뿐 실제는 ‘2030 온라인 기도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모이기 어려운 상황에서 교회가 성도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됐다.
DJ는 임채영(59) 목사다. 송형섭 부목사와 이재무 부목사, 서문덕준 전도사가 각각 연출과 조연출을 맡아 방송을 만들어 간다. 지난 2일 만난 임 목사는 “교인들이 부담 없게 설거지하면서도 들을 수 있고 각자 자리에서 함께 기도할 수도 있는 기도회를 만들어보자 해서 부랴부랴 시작했다”며 “교인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참석한다는 의미보다 함께할 수 있다는데 초점을 뒀다”고 말했다.
‘라방’(라디오 방송) 컨셉은 임 목사 아이디어였다. 오프닝 멘트도 본인이 직접 준비한다. 최근 기도회 때 나눈 봄 얘기는 코로나19로 인해 봄을 잃은 우리 모습을 생각하며 썼다고 한다. 임 목사는 “형식적이고 의식적인 것보다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교인들과) 만나길 원한다. 제 성향인 것 같다”면서 “평소 교회에 라디오방송국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코로나 19로 이렇게 등 떠밀리듯이 하게 됐다”며 웃었다.
시작한 지 2주밖에 되지 않았지만, 교인들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첫 기도회 때 40명 정도였던 참석자 수가 두 번째, 세 번째 기도회 때는 50~60명으로 늘었다. 일 때문에 뉴욕으로 출장 갔다 발이 묶인 성도도 참석했다. 실시간 채팅으로 기도 제목을 나누며 기도회를 함께 만들어 갔다.
송 부목사는 “일단 모일 수 없는 상황에서 이렇게라도 소통하는 것을 다들 좋아하셨다”며 “각자 다른 곳에 있지만, 같은 내용으로 기도하고 공감할 수 있어 하나가 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실시간으로 기도회에 참석하지 못한 분들도 유튜브에 영상이 남아 있으니까 뒤에 따로 참여하는 분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어려운 점도 있다. 임 목사는 기도회가 끝나면 밀려오는 허전함이 있다고 했다. “같이 뜨겁게 기도하고 그런 게 아니다 보니 기도회가 끝났는데 방송 끝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고 전했다. 임 목사는 “이번 기회에 교인들이 ‘혼자도 예배드릴 수 있지만, 함께 드리는 예배가 굉장히 좋구나’라는 걸 많이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부교회는 온라인 기도회를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도 계속 진행할 계획이다. 임 목사는 “우리 교회가 수요예배를 오전에 드리는데 오후에는 온라인 기도회로 드릴 생각이다. 당장 부활절 이후부터 수요일 오후 8시에 온라인 기도회를 진행할 계획”이라며 “교인들과 전화 연결도 하고 사연을 받아서 들려주기도 하며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진 교회에 와야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이라 생각했는데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며 “삶 속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신앙적 도전도 받고 위로도 받으면서 주일 예배는 어떤 면에서 축제처럼 드리는 방향으로 가고 싶다”고 밝혔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소속으로 올해 설립 63년째를 맞이한 서부교회는 최근 교회와 교인이 함께 바라볼 ‘비전 2030’을 새로 정했다. 임 목사는 “이 지역이 재개발되면서 이전의 60년 가까운 세월보다 최근 5년이 교회에겐 더 격동의 시기였다”며 “함께 바라볼 목표와 비전이 있었으면 했는데 ‘이웃에 꿈이 되는 교회’로 정했다”고 말했다. 임 목사가 온라인 기도회에 2030을 붙인 것도 비전을 공유하고픈 마음에서였다. 임 목사는 “목회가 10년쯤 남았는데 다른 데 보지 않고 교인들과 함께 같은 비전으로 열심히 뛰고 싶다”고 전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