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에 논란 전가 막으려 ‘n번방 재판’ 재배당”

입력 2020-04-07 04:02

김병수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가 ‘박사’ 조주빈(25)씨의 공범 ‘태평양’ 이모(16)군의 1심 재판을 맡았던 오덕식 부장판사를 교체한 이유는 청와대 국민청원 때문이 아니라고 밝혔다. 오히려 오 부장판사가 자신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피고인에게 옮겨지는 것을 우려해 스스로 재배당을 요청했다는 게 김 부장판사의 설명이다.

6일 법원에 따르면 김 부장판사는 지난 3일 형사부 판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오 부장판사가 담당하던 ‘n번방’ 사건을 재배당한 경위에 대해 설명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30일 텔레그램에서 ‘태평양’이란 이름으로 활동한 이군 사건을 형사20단독(부장판사 오덕식)에서 형사22단독(박현숙 판사)으로 재배당했다. 조씨 일당의 성착취 사건을 오 부장판사에게 맡겨선 안 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40만명을 넘긴 직후 오 부장판사 본인이 직접 재배당을 요청했다.

김 부장판사는 “오 부장은 재판을 받는 피고인이 16세의 미성년자이고,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피고인에게 전가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이를 감당하면서 재판을 받도록 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 판단해 재배당을 요청하는 어려운 결정을 했다”고 경위를 설명했다. 국민청원에 떠밀렸다는 법원 안팎의 비판이 나오자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오 부장판사는 가수 고(故) 구하라씨를 폭행·협박한 혐의를 받은 최종범씨의 1심 재판에서 구씨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생활이 담긴 동영상을 확인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김 부장판사는 이에 대해서도 “피고인이 동영상 내용이 공소사실과 다르다는 취지로 다퉜다”며 “그 내용에 따라 협박 사실의 유무죄 판단이나 양형에 미치는 영향이 중요해 확인이 불가피했을 것”이라고 적극 해명했다.

그러면서 “피해자 변호인이 2차 피해 우려가 있다며 재판장이 판사실에서 동영상 내용을 확인할 것을 제안했고, 오 부장은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이해된다”며 “내용 확인이 불필요했다거나, 변호인 반대에도 일방적으로 결정해 판사실에서 동영상을 확인했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김 부장판사는 끝으로 “n번방 사건이 알려진 후 국민의 분노가 법원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며 “법원이 n번방을 키웠다는 말에 가슴이 저려온다”고 말했다. 그는 “공소사실 유무죄 판단이나 양형에 대한 비판은 법관 모두가 감수할 책임이자 숙명이지만, 왜곡·과장 보도로 인한 과도한 비난마저 온전히 법관 개인이 책임지고 감당하라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덧붙였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