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도 본능 있어”… 드라마 ‘부부의 세계’ 4회만에 신드롬

입력 2020-04-07 04:03
JTBC 금토극 ‘부부의 세계’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배우 김희애 박해준 한소희(왼쪽 사진부터). 지난달 27일 첫 방송된 이 드라마는 강렬한 스토리를 앞세워 요즘 안방극장을 뒤흔들고 있다. JTBC 제공

흔한 불륜 드라마가 아니었다. 일터와 가정에서 완벽에 가까웠던 가정의학과 전문의 지선우(김희애)의 삶에 균열이 일기 시작한 건 남편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되면서였다. 주변 모두가 공범이었고 내심 자신을 비웃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선택해야 했다. 악에 받쳐 분노를 토해낼지, 우아하게 중심을 잡을지. 그가 집어 든 건 가면이었다. 처절한 앙갚음을 다짐한 그는 이내 차분하게 표정을 바꿨다. 복수의 시작이었다.

이 같은 이야기를 뼈대로 삼는 JTBC 금토극 ‘부부의 세계’가 방송 4회 만에 안방극장 최고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BBC 인기드라마 ‘닥터 포스터’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사랑이라고 믿었던 부부의 연이 배신으로 끊어지면서 인물들이 소용돌이에 휩쓸리는 이야기다. 지선우가 서늘한 역습을 시작한 4회 시청률은 15%를 돌파했다. ‘청소년 관람 불가’에 밤 11시 편성이라는 악조건에도 흡인력 강한 스토리로 안방을 장악했다.

온라인에서는 밀도 있는 심리 묘사와 빠른 전개가 일품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제작진은 지선우가 진실을 알게 되고, 발톱을 드러내는 과정을 속도감 있게 그려냈다. 인상적인 대사도 극의 재미를 끌어올리는 요소다. 지선우는 의도적으로 남편의 동창인 손제혁(김영민)과 하룻밤을 보낸 뒤 이렇게 말한다. “여자라고 바람피울 줄 모르는 거 아냐. 부부로서 신의를 지키려고 자제하는 거지.” 지선우의 이 대사는 부부 관계를 받쳐주는 믿음의 가치를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이 장면 외에도 드라마에선 ‘관계의 본질’에 관해 생각하게 만드는 내용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작품의 인기를 견인하는 것은 김희애의 연기다. 김희애는 지난달 26일 온라인 생중계 형태로 진행된 제작발표회에서 “감정 기복이 큰 캐릭터여서 연기를 잘 해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막상 연기를 시작하니 ‘감정’이 멈추지 않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파 껍질을 벗겨내듯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의 발언처럼 김희애는 이번 작품에서 혼란과 절망의 감정을 노련하게 그려내며 시청자들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연출을 맡은 모완일 PD는 “김희애와 작업할 수 있게 된 것은 내게 큰 영광”이라며 “놀라운 감정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부부의 세계를 향한 전문가들의 호평도 이어지고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지루할 틈 없이 사건이 터진다. 인물 간의 미묘한 심리 변화도 잘 그려내고 있다”며 “부부의 세계는 인간의 위선적인 민낯에 분노하게 만들면서, 카타르시스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김희애는 지선우가 겪는 절망을 섬세하게 그려내 시청자들이 인물에게 몰입하게 만들고 있다”며 “시청자들의 분노가 유독 크게 느껴지는 건 캐릭터의 감정 변화를 절묘하게 그려내는 김희애의 연기력이 한몫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