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이참에 경제정책 체계 정비하자

입력 2020-04-07 04:04

코로나19가 익숙했던 생활 패턴을 바꾸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갑자기 다가온 재택근무 등으로 바뀐 일상이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과거 모습 그대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경제정책의 패러다임도 예외가 아니다.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주요국들은 천문학적 규모의 돈을 쏟아붓고 있다. 재정 건전성을 중시하던 독일이 발표한 재정지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30%에 달한다. 마치 ‘헬리콥터 머니’와도 같은 현금 지원이 대부분 나라에서 앞다투어 핵심 정책으로 채택되고 있다. 이번 위기를 넘기고 나면 재정의 역할이나 재정 건전성의 의의 등과 관련해 기존 관념에서 벗어난 새 프레임을 짜는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도 이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생각된다. 금번 위기에 대응해 중앙은행들은 이미 마이너스 수준인 금리를 더 낮추고 무제한·무차별적 양적완화에도 들어섰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고안했던 온갖 종류의 정책수단을 다시 꺼내놓았으며 금융시장 경색을 완화하기 위해 별도 기구를 활용한 회사채나 기업어음(CP) 매입, 영리기업 대출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번 경제위기를 거치며 알게 모르게 중앙은행의 역할에도 많은 변화가 있어 온 것이다.

1970년대 높은 인플레이션을 경험한 이후 중앙은행의 존재가치는 물가안정에 있었다. 이를 위해 중앙은행 독립성을 강화함으로써 물가안정보다 경제 성장을 선호하는 정부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고 물가안정목표제도 도입했다. 이 같은 장치는 이후 오랫동안 세계 경제가 인플레이션 위험 없이 안정된 성장을 누리는 데 많은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저물가가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연이어 발생한 금융위기와 재정위기의 대응 과정에서 통화정책은 가장 효과적인 정책수단(the only game in town)이었다는 찬사를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정책 목표도 물가안정을 넘어 금융안정, 경기안정으로 확대됐다. 이번 경제위기에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과감하리 만큼 전면에 나선 데에는 그동안 변화된 중앙은행에 대한 기대나 중앙은행의 역할이 영향을 줬을 것이다. 사실 중앙은행의 목적은 불변이 아니라 시대 상황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다. 중앙은행은 그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바를 충족시켜줄 때 존립이 가능한 사회적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참에 우리나라의 경제정책 체계를 전면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통화정책 역할과 관련해선 위기가 닥칠 때마다 상당한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금융시장이나 정부, 한국은행 모두 나름의 논리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비생산적 비판과 방어만 계속하기보다는 머리를 맞대고 우리 경제의 안정 성장 지속을 위해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현명하다. 여타 중앙은행의 정책수단이나 권한과 비교도 해보고, 과거 위기 대응 당시 우리에게 부족했던 부분이 무엇이었는지도 검토해 본 뒤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면 바꾸고 한은법을 개정해야 한다면 정부와 한은, 국회가 적극 협력해 개정해야 한다. 한은도 과거 정부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정부와 협력하고 시장과 소통하면서 독립적인 판단 하에 주도적으로 금융시장을 이끌고 나가야 한다.

재정 당국과 통화 당국이 제도적·관행적 경직성에서 벗어나 과감하고 적극적인 정책으로 대응해 나간다면 끝을 알 수 없는 지금의 위기도 언젠가 극복될 것이다. 그러나 위기는 또 다른 모습으로 찾아올 것이다. 중장기적 시각에서 더 효과적인 대응을 위한 경제정책 체계를 정비하는 논의도 당장 시작해야 한다. 지금의 어려움을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