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회사채 시장 불안 심화 땐 증권사에 대출도 검토

입력 2020-04-03 04:09

한국은행이 증권사 등 비은행 금융기관에 회사채를 담보로 대출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정부 보증이 필요하다며 회사채 매입을 통한 시장 안정화에 난색을 표하던 한은이 며칠 만에 기조를 바꿔 우회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국민일보 3월 25일자 4면 참조).

이주열 한은 총재는 2일 간부회의에서 “상황이 악화될 경우 회사채 시장 안정을 위해 한국은행법 제80조에 의거,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출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전 세계적 전개와 국제 금융시장의 상황 변화에 따라 회사채 시장 등 국내 금융시장에서 신용경색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한은으로서는 비상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해둬야 하겠다”고 덧붙였다.

한은법 제80조는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데 중대한 애로가 생겼거나 생길 가능성이 높을 때 한은이 비은행 금융기관을 비롯한 영리기업에 돈을 빌려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금융통화위원 중 4명이 동의하면 가능하다.

이번 방침은 한은이 지난 23일 회사채를 직접 떠안는 방식의 시장 개입 요구를 단호히 물리친 것과 대조된다. 당시 한은은 매매 대상 유가증권에 대한 정부 보증을 요구하는 한은법 제68조를 들어 유통성과 안전성이 미흡한 회사채나 CP(기업어음)를 사들이는 방식은 한은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한은의 비은행 금융기관 대출은 각 기업이 자금 마련을 위해 발행한 회사채 등을 담보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한은이 정부 보증 없는 회사채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공급하는 셈이다.

한은은 이날 은행과 증권사 등을 대상으로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입찰을 진행해 전체 응찰금액 5조2500억원을 모두 공급키로 했다. 만기는 91일, 금리는 기준금리(연 0.75%)보다 0.03% 포인트 높은 연 0.78%로 결정했다. RP는 금융기관이 일정 기간 후 다시 사들이는 조건으로 파는 채권이다. 한은이 RP를 사들이면 매입 금액만큼 시장에 돈이 풀리는 효과가 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