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

입력 2020-04-03 04:02

2020년 1월 법무부는 지난해 검찰 정기인사 후 6개월도 안 돼 검찰 인사를 단행했다. 문재인정부의 살아 있는 권력에 칼을 겨눈 검사장들을 모두 수사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고, 수사팀 중간간부들을 대부분 교체했다. 언론에서 검찰총장이 특별수사팀을 꾸려 수사를 계속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자, 법무부는 이를 봉쇄하기 위해 법무부 장관의 승인 없이는 특별수사팀을 꾸리지 못하도록 관련 법령을 개정했다. 이번 인사가 정권 수사를 저지하려는 의도였음을 드러낸 것이다.

지난 1월 인사로 검찰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유재수 감찰 무마,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비리 등 정권 수사에 차질을 빚었다. 언론은 이번 인사를 ‘검찰 무장해제’ ‘검찰 대학살’ ‘정권 보신용 보복인사’라면서 정권 수사를 하는 검찰의 손발을 자르고 팔다리를 묶었다고 보도했다. 검찰 수사팀을 ‘쿠데타 세력’이라 규정한 사람이 21대 국회의원 선거의 여권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해 그들을 ‘기필코 몰아내겠다’고 한다.

수사는 실체적 진실을 발견해 정의를 세우고, 사회를 방위해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절차다. 수사는 실체적 진실을 밝힘으로써 민주주의의 기반인 신뢰를 형성한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이라 해도 법질서를 위반한 의혹이 있다면 그 시시비비에 대해 수사를 받고 그 진위를 법정에서 가리는 것이 헌법이 정한 법치주의 정신이다. 검찰 인사권은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라는 국민의 명령을 검찰이 공정하게 또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행사돼야 한다. 인사권자는 검찰의 범죄대응 수사 역량을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 이런 이유로 종래에는 계속 수사 중일 때는 인사 대상자라 해도 수사 검사를 교체하지 않았다. 교체하는 경우에는 직무대리 발령으로 수사가 방해받지 않도록 했다. 수사를 방해하는 검찰 인사는 진실을 가리고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 인사와 관련해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있고 이는 존중받아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의 인사권은 마땅히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국가권력은 그 형성에 있어서 민주적 정당성을 가져야 할 뿐 아니라 그 행사에서도 민주적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도 법치주의에 의한 제약을 받아야 한다. 대통령의 검찰 인사가 법치주의와 그 정신을 훼손해선 안 된다.

1월의 검찰 인사는 청와대가 깊이 개입했다고 한다. 인사에 개입했다는 민정비서관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에 공범으로 적시돼 있고, 공직기강비서관은 조국 전 장관 아들에게 허위 인턴 증명서를 발급해 준 일로 기소된 사람이다. 이번 인사가 법치주의와 정의를 훼손하고 공정한 인사가 아니라고 비판받는 이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법이 엄격하게 집행되면, 민주정(民主政)에서 타락한 중우정(衆愚政)이 극복될 수 있다’고 한다. 대통령 권력의 집중으로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법치주의가 강조돼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義)와 인(仁)과 신(信)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다(마 23장 23절). 정의를 내용으로 하는 법치주의, 실질적 법치주의를 존중하라는 말씀이다. 실질적 법치주의는 대한민국 헌법이 추구하는 법치국가 원리다. 국민이 명령하는 검찰 개혁은 수사를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정권으로부터 독립해 공정하게 수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검찰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해 국가 정의를 세우고 국민 인권이 신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