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교회에 가고 싶다

입력 2020-04-04 04:02

교회에 가고 싶다. 예배당에 들어가고 싶다. 성가대와 기악부의 찬양을 듣고 싶다. 장의자에 앉아 두 손 모으고 눈 감고 기도하고 싶다. 교회 식당 설거지를 끝내고 남선교회 회원들과 커피 한잔 하고 싶다. 복도를 뛰어다니던 교회학교 아이들이 보고 싶다. 매일 출퇴근 때 교회를 지나간다. 잠깐 들러 기도라도 하고 싶지만 지금은 그것도 안 된다.

지금은 참아야 한다. 지하철을 타고 온 내 옷에 바이러스가 묻었을지 모른다. 교회를 들락거리는 내 모습에 옆집 할머니가 불안할 수 있다. 불안은 의심과 혐오로 이어지기 쉽다. 교회가 손가락질 받고 오해를 받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주일 예배 때는 모이겠다는 교회도, 주일 예배는 자제해 달라는 정부도 이해가 간다. 교회도 정부도 그만큼 당황스러운 상황이다. 정부는 5만5767개 교회(2014년 통계)의 처지가 다 다르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교회도 정부의 요청에 부응하려고 애쓰고 있다. 다만 교회가 이왕이면 좀더 어른스러우면 좋겠다. 대한민국 정부가 일흔 살이면 교회는 2000살이다.

이 글의 첫 문장은 틀렸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내가, 나와 함께 믿는 사람이 모인 곳이 교회다. 영상예배만 아니라 가정예배를 드려도 그곳이 교회다. 예배처소도 마찬가지다. 예루살렘이나 성전만이 예배드릴 곳이 아니다(요 4:19∼24). 자가격리 중에 혼자 예배를 드릴 수도 있다. 빨리 모이자고만 할 일이 아니다. 떨어져 예배를 드려도 더욱 정성껏 더 경건하게 예배 드리도록 돕는 일이 더 중요하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일은 말라기 1장 10절의 실현일 수도 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언제 다시 모이냐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우리가 겪는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고 고백한다면, 한국교회는 그 뜻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우선 이 두 질문에 답해보자.

첫째, 교회는 과학과 이성을 존중하는가. 과학주의 즉 자연과학만 실재에 대한 유일한 진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교회가 받아들일 수 없지만 과학이 발견한 사실 그 자체는 인정해야 한다. 지금 중요한 과학적 사실은 변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숙주의 종교를 가리지 않고 마구 번식한다는 발견이다. 과학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소금물을 입 안에 쏘는 행동이나 ‘우리는 괜찮겠지’라는 생각은 비과학적이다. 교회는 영성 혹은 감성을 앞세우며 지적 탐구와 논의를 무시해온 경향이 있다. 자연과학이 발견한 사실도 창조의 원리, 창조 질서의 일부다. 존중해야 한다. 인문학은 인간사회가 만든 질서와 문화의 체계를 설명한다. 인간의 역사도 하나님이 주관한다고 믿는다면, 교회는 인문학에도 귀 기울여야 하고 배워야 한다. 가짜뉴스를 물리치고 진실과 대화해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교회는 지성과 영성이 조화되는 신앙을 추구해야 한다.

둘째, 교회는 지역사회와 공감하는가. 교회는 산 위가 아니라 사회 속에 있다. 교단의 교회, 교인의 교회인 동시에 지역 교회다. 교인이 바로 주민이고, 주민들은 교회가 겸손히 섬기고 돌봐야 할 이들이다. 위기일수록 교회는 교회 안에 머무르지 말고 주민의 형편을 살피고 시민사회와 공감대를 넓혀야 한다. 그래야 교회가 예배 때 어디에서 모이든 존중 받을 수 있다. 변종 코로나19 사태 이후 교회 주변 상가를 찾아가 소독하는 일을 하고 있는 강남중앙침례교회 최병락 목사는 “지금이 교회가 이 도시에 진 빚을 갚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두 질문의 답은 분명하다. 교회의 현실은 그 답에서 멀다. 종려주일, 부활절이 다가온다. 더더욱 모이고 싶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코로나19 시대가 교회에 던지는 질문에 응답하는 일이다.

김지방 미션영상부장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