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일 밤 11시. 서울의 한 주택가에서 혼자 치킨집을 운영하는 오연성(가명)씨는 가게 문을 닫자마자 서둘러 서울 종로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서울중부센터로 향했다. 그리고 1일 오전 3시쯤까지 홀로 센터 건물 2층 계단을 지켰다. ‘소상공인 초저금리 대출 지원’을 받기 위해서다.
오씨는 이틀 전 건물주에게서 “월세를 언제까지 줄 수 있느냐”는 문자를 받고 다급하게 초저금리 대출을 알아봤다. 전날 센터를 방문해 ‘1일부터 대출 신청이 본격 시행되고, 현장 접수는 30명까지만 받는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가 밤을 꼬박 새우며 대기한 까닭이었다.
1일 전국 62곳의 소진공 지역센터와 전국의 기업은행, 전국 14개의 시중 은행에서는 ‘소상공인 초저금리 대출’ 신청이 시작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급전이 필요한 소상공인들을 위해 정부는 금리 1.5%의 초저금리 대출을 금융 대책으로 내놨다. 신용등급에 따라 1000만~3000만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이날 오전 6시30분 서울 중부센터에서 대기하던 소상공인은 50여명이 넘었다. 하지만 이들 중 20여명은 센터가 문을 열기도 전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당일 현장 접수 선착순 30명’ 안에 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새벽같이 기다렸던 이들을 포함해 이날 오후 늦게까지 수십명이 접수조차 못 하면서 현장에서는 종일 거센 항의가 이어졌다.
센터 측은 “접수가 너무 몰려 이번 주는 더 이상 (실제 대출 신청이) 힘들 것 같다. 다음 주 홀수일에 다시 접수해야 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접수 이후에도 실제 대출 신청까지는 절차가 남아 있다. 2일이나 3일에 접수해도 실제 대출 신청은 6, 7일에나 가능하다.
소진공 대출은 인파가 몰릴 것에 대비해 2부제로 운영된다. 출생연도가 홀수면 홀수일, 짝수면 짝수일에 대출 신청 접수가 가능하다. 오전 9시 전부터 기다렸던 한 소상공인은 “애써 기다린 사람들을 돌려보낼 게 아니라 접수라도 받아주면 되는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 온라인 접수 또한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면서 비판이 쏟아졌다.
불만은 무엇보다 현장 대출 접수 건수를 센터마다 30건 안팎으로 제한한 데서 터져 나왔다. 소상공인들은 ‘인원수 제한’에 대한 정보를 거의 알지 못했다. 센터 직원들도 몇 시에 ‘접수 마감’이 이뤄질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접수조차 못 한 소상공인들은 “정부가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어놓고 나 몰라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른 새벽부터 찾아온 이들을 상대로 규정을 언급하며 되돌려 보내는 건 소상공인들의 절박한 심정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따라서 하루 대출 신청 가능 물량이 제한적이라고 해도 직접 방문한 이들의 접수조차 막는 지금의 대처 방식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시행 초기다보니 현장 적응에 시간이 다소 필요한 듯하다”며 “온라인 예약제와 홀짝제가 하루빨리 정착돼 소상공인들에게 힘을 보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반면 은행권의 소상공인 저금리 대출 현장에선 온도차가 느껴졌다. 연 1.5% 금리로 3000만원까지 대출해 주는데 부산, 제주 등 일부 지역 지점에서만 대출 상담 문의가 집중될 뿐이었다. 서울 주요 상권의 은행 지점은 상대적으로 한산했다.
은행 대출이 상대적으로 한산한 데는 ‘신용등급’이 걸림돌이 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14개 시중 은행의 소상공인 긴급 대출은 고신용자(1~3등급), 기업은행은 중신용자(4~6등급)까지 해당된다. 서울 을지로의 한 은행 지점 관계자는 “인쇄소, 조명업체 등 인근 자영업자들은 중신용자들이 상당수”라며 “신용등급 확인 후 돌아가시는 분들도 많았다”고 했다.
은행은 대출 상환 기간이 촉박한 점도 부담이다. 시중 은행과 기업은행에선 3000만원을 대출받을 수 있지만, 연 1.5% 금리가 적용되는 기간은 시중은행이 1년으로 가장 짧다. 기업은행은 3년, 소진공은 5년이다.
서울 시내에서 주차장을 운영하는 김모(40)씨는 “신용등급이 3등급이라 오전에 시중은행으로 갔는데 3000만원을 무조건 1년 안에 갚아야 한다고 해서 그냥 나왔다”며 “소진공에선 1000만원 밖에 (대출이) 안 나오지만 7등급 이하도 가능하고 대출 기간도 가장 길어 사람이 몰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수정 정진영 조민아 양민철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