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n번방 피해자 보듬을 국가 지원시스템 갖추라

입력 2020-04-02 04:03
‘n번방 사건’ 피해 여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의 피해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는 것이다. 가해자 조주빈이 세상을 향해 고개를 들고 우쭐거리는 멘트를 하는 순간에도 정작 피해자들은 행여 들킬까 봐 꼭꼭 숨었다. 텔레그램 ‘박사방’에서 제작·유포된 성착취물 피해자는 최소 74명. 이 중 신원이 파악된 이는 고작 20여명에 불과하다. 다른 이들은 사회적 낙인에 대한 공포로 끔찍한 기억을 혼자 떠안은 채 고통받고 있다. 특히 미성년 피해자들은 부모에게 알려지는 게 죽기보다 싫다고 울먹인다. 지난해 7월부터 이 사건을 추적해온 국민일보 특별취재팀과 두 명의 대학생 ‘추적단 불꽃’이 털어놓은 이야기(3월 28일자 1, 5면)다. 피해자로 낙인찍힌 후 주변에서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두려움, 문제 해결을 위해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다는 사회적 고립감. 피해자들이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 이유이다. 가해자를 끝까지 추적해 엄중하게 처벌하는 것 못지않게 피해자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여성가족부는 1일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보호와 지원을 위한 대책을 내놓았다. 눈에 띄는 것은 불법 성착취물의 제2, 제3의 유포를 막기 위한 신속한 삭제 지원이다. 특히 미성년자의 경우 부모 동의 없이도 삭제가 가능하도록 했다. 하지만 서버를 해외에 둔 사이트의 경우 이를 강제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또 경찰이나 피해자센터 등에서 미성년자의 부모에게 신고 내용을 알리지 않아도 재판 진행 과정에서 이 사실이 드러날 수도 있다. 피해자를 고려해 대책을 세밀하게 가다듬어야 한다. 이들이 신뢰할만한 국가적 지원 시스템을 갖춰 신속하고 종합적인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