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공포에… “유채꽃길 갈아엎자”

입력 2020-04-02 04:08
1일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녹산로에 봄꽃이 만개해 있다. 표선면 주민들은 최근 서울 강남 거주 미국유학생 모녀가 정부의 자가격리 지침을 어긴채 이곳을 여행한 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확진 판정을 받자 이길의 꽃을 파쇄토록 제주도에 요청했다. 뉴시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들어가는 제주의 봄철 드라이브 명소 ‘녹산로’ 유채꽃길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서울 강남 미국유학생 모녀’가 표선면 일대를 다녀간 뒤 주민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감염 공포에 사로잡히면서 외부인 차단을 위해 꽃을 갈아엎어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녹산로’는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를 지나는 10㎞ 길이의 왕복 2차선 도로다. 봄이면 노란 유채꽃과 분홍 벚꽃이 도로 옆을 가득 수놓는다. 매년 봄이면 수만명의 상춘객이 찾는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됐으며, 제주에서 가장 큰 유채꽃축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녹산로가 위치한 가시리 마을 주민들이 최근 녹산로 일대 유채꽃을 평소보다 일찍 파쇄해줄 것을 제안했다고 서귀포시가 1일 밝혔다.

미국 유학생 모녀가 제주를 다녀가며 표선면 곳곳이 임시 폐쇄된 것을 목격한 주민들이 코로나19 감염의 공포를 체감하기 때문이다. 마을 식당과 슈퍼 등 동네 곳곳에서 방문객들을 마주하는 주민들로서는 이번 봄 만큼은 외지인과의 만남을 피하고 싶어진 것이다.

서귀포시는 녹산로 일대에 유채꽃과 코스모스를 번갈아 파종하며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유채꽃의 경우 보통 4월 말에서 5월 초 사이 파쇄하고 코스모스를 파종하는데, 올해는 이례적으로 주민들이 만개한 꽃밭을 갈아엎어달라고 요청해 내부 논의에 들어간 상태다.

정윤수 가시리 이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다음주쯤 서귀포시와 최종 파쇄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며 “주민 1500명 중 노인 인구가 상당히 많아 감염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