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국민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불특정 다수와의 접촉을 가급적 피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집안에만 있기 답답해 떠난다면 코로나19 등의 바이러스를 억제하고 면역력을 높이는 녹차를 찾아보자. 녹차의 주요 성분이자 폴리페놀의 일종인 ‘카테킨’이 항(抗)바이러스·항염증에 효과가 있다. 또 ‘테아닌’이 면역세포의 방어력을 높여 우리 몸이 바이러스 등의 위험에 노출됐을 때 빠른 대응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녹차의 고장은 전남 보성이다. 산비탈의 능선을 유려하게 휘감은 초록색 차밭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조용히 앉아 차 한잔을 마시면 바이러스는 얼씬도 못 할 듯하다.
보성 읍내에서 영천리 율포로 이어진 18번 국도의 봇재를 찾아가자. 주변에 조성된 수많은 차밭이 싱그러움을 자랑한다. 등고선을 이어놓은 듯 녹차 이랑이 층층이 휘감은 녹차밭 너머로 멀리 득량만 바다와 섬들이 그림 같은 풍경을 내놓는다.
봇재고개 인근에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봤던 보성 최대 차밭인 대한다원이 있다. 1939년에 개원한 곳으로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폐허가 된 것을 1957년 장영섭 회장이 인수해 녹차관광농원으로 일궜다.
주차장에서 다원 입구까지 하늘을 찌를 듯 삼나무가 도열해 있다. 쭉쭉 뻗은 삼나무 숲길을 걸으면 ‘피톤치드 샤워’를 하는 느낌이다. 코로나19로 잔뜩 움츠렸던 마음이 활짝 열린다. 삼나무 오솔길을 지나면 초록빛 차밭이 곡선을 그리며 파도처럼 일렁인다.
잘 정돈돼 가지런한 보성 차밭과 달리 경남 하동의 녹차는 대부분 야생차다. 경사진 산기슭에 자리잡은 차밭 바위틈에 강한 생명력으로 자라고 있다. 우리나라 차 시배지(始培地)도 있다. 약 1200년 전 당나라에서 들여온 차나무 종자를 이곳에 심고 번식시켰다고 삼국사기가 전한다. 차 시배지 기념비 인근에 수령 1000년을 넘긴 야생 차나무가 건재하다.
하동의 차는 왕에게 진상품으로 올릴 만큼 품질이 좋았다. 조선시대까지 명목을 이어오던 하동 차는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개량종이 마구잡이로 유입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전통차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현재까지 지역 토착 품종을 유지하고 있다.
제주에서 유명한 녹차밭은 서광다원이다. 동·남·북쪽으로 각각 산방산, 송악산, 한라산이 보이는 제주 서남부 지역 92만㎡ 규모의 너른 평야지대에 펼쳐진 서광다원은 아모레퍼시픽이 1981년 만든 차밭이다. 1979년 전통차 사업을 시작한 이 회사가 도순다원에 이어 두번째로 일군 곳이다. 도순다원이나 94년에 만든 한남다원과 달리 여행자들이 차밭을 산책하고 쉬어갈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차밭을 돌아본 다음에는 맞은편의 오설록 티뮤지엄으로 향한다. 녹차 아이스크림이 인기다. 박물관도 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전통 찻잔들과 전 세계의 차문화를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찻잔들이 정갈하게 전시돼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전망대가 있다. 탁 트인 초록 평지가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글·사진=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