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정상화 장담하더니… 트럼프 ‘거리 두기’ 조치 한 달 연장

입력 2020-03-31 04:02
비영리 구호단체 사마리아인의 지갑(Samaritan’s Purse) 회원들이 2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에 임시 야전병원으로 사용할 텐트를 설치하고 있다. 확진자가 6만명에 육박한 뉴욕주는 환자를 수용할 병원시설이 한계에 처했다. EPA연합뉴스

4월 12일 부활절 이전까지 미국의 경제활동을 재개하고 싶다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말은 결국 꿈같은 소리가 되고 말았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잡히지 않으면서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이동제한, 자택격리, 사회적 거리두기 등 봉쇄 조치를 연장하고 나섰다. 코로나19와의 싸움이 장기전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4월 말까지 한 달 연장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주 안에 코로나19 사망률이 정점에 달할 것이고 “미국은 6월 1일까지 회복되는 경로에 있을 것이며 많은 멋진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활절 이전까지 미국의 경제활동을 정상화하고 싶다고 했지만 감염 확산을 우려하는 여론에 밀려 뒤로 물러섰다. 그는 정상화 언급이 실수였느냐는 질문에 “그것은 단지 열망이었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이 29일(현지시간) 백악관 장미정원에서 코로나19 태스크포스의 브리핑을 듣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거리두기 지침을 연장키로 한 데는 미국 내 감염병 최고전문가로 인정받는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 소장의 비관적 전망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파우치 소장은 이날 오전 CNN 인터뷰에서 “수백만명의 미국인이 코로나19에 감염되고 10만명 이상이 사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 도중 “나는 그가 말한 숫자를 믿지 않는다”며 파우치 소장을 연단으로 불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파우치 소장은 “100만명 이상이 감염될 수 있다는 건 전적으로 가능한 일”이라고 거듭 말했다.

30일 미 존스홉킨스대 집계에 따르면 미국의 감염자는 14만3000여명으로 1주일 새 4배 이상 치솟았다. 코로나19 핫스팟인 뉴욕주에서는 7200명이 새로 확진 판정을 받아 누적 환자가 5만9000여명으로 늘었다. 현재 미국에서 행정명령으로 이동을 제한하는 곳은 27개주에 이른다.

총리와 왕세자가 줄줄이 코로나19에 감염된 영국에서도 봉쇄령이 6개월 이상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영국 최고 보건책임자인 제니 해리스 박사는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3주간의 이동금지령이 만료될 때쯤 이 조치의 효과를 검토하겠다면서 “코로나19 곡선이 정점을 찍더라도 평범한 일상생활로 갑자기 돌아가선 안 된다. 우리가 멈추면 모든 노력이 쓸모없어지고 제2의 급증사태를 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 정부에 코로나19 대응책을 조언하는 닐 퍼거슨 교수도 선데이타임스에 “이동제한령이 6월 초까지 이어질 수 있다. 5월도 낙관적으로 본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은 지난 23일부터 전 국민의 이동과 여행을 제한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관저에 격리 중인 보리스 존슨 총리는 이날 “상황이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이라며 거리두기 수칙을 엄격히 지켜 달라는 대국민 서한을 발표했다. 영국의 감염자는 2만명에 육박하고 사망자도 1000명을 넘었다.

중남미 대륙도 확진자가 1만5000명에 육박한 가운데 아르헨티나는 이달 말 종료 예정인 전국민 강제격리 조치를 4월 중순까지 연장했다. 필수업무 종사자가 아니면 식료품이나 의약품을 사는 경우를 제외하고 집 밖에 나갈 수 없다.

동남아시아 국가 가운데 감염자가 가장 많은 말레이시아도 지난 18일부터 이달 말 시한으로 시행 중인 이동제한 명령을 2주 연장해 다음 달 14일까지 지속하기로 했다.

권지혜 기자,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