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거수기 ‘주정심’… 5년간 대면회의 2회뿐

입력 2020-03-30 04:07

정부의 굵직한 부동산정책을 심의·의결하는 기구인 주거정책심의위원회(주정심)가 출범 이후 5년간 개최한 회의에서 심의위원들이 직접 참여해 정책을 다루는 대면회의는 10%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심의 안건은 단 한 번도 ‘부결’된 적이 없었다. 주정심이 본래 취지인 정책 심의도 제대로 하지 않고 ‘졸속 기구’ 및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29일 국민일보가 국토교통부에 정보공개 청구를 해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주정심은 2015년 출범 이후 현재까지 총 27차례 회의를 열었다. 이 중 두 차례만 대면회의로 진행됐다. 나머지 25차례는 모두 서면회의로 대체됐다. 모든 회의 안건은 별다른 이견 없이 ‘가결’로 종료됐다.

주정심은 정부의 주요 부동산정책을 심의하고 방향을 결정하는 기구다. 어디를 개발하고 어디를 규제할지 결정하기 때문에 책임이 막중하다. 또 택지개발지구와 투기과열지구,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어떤 지역에 적용하고 해제할 것인지도 판단한다. 주정심의 정책 판단에 따라 한국의 부동산 지형이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주정심의 책임과 역할이 크기 때문에 주거기본법과 주정심 운영세칙에서는 대면회의를 기본 원칙으로 삼고 서면회의를 한정적으로 운영토록 했다. 서면회의는 안건 내용이 경미한 경우, 긴급 사유로 위원이 출석하는 회의를 개최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경우, 천재지변 등 부득이한 사유로 위원 출석에 의한 의사정족수를 채우기 어려운 경우로 한정한다.

서면회의를 남발하다 보니 대면회의에서 위원들이 정책에 대한 의견을 활발하게 교환하고 정책을 개선할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국민의 주거환경에 영향을 미칠 각종 사안도 심도 깊게 다뤄지지 않는다. 서면회의의 경우 국토부가 심의 안건과 내용을 문서로 보내면 주정심 위원들이 찬성 혹은 반대를 표하고, 부대의견을 문서로 회신받는다. 회신 이후 국토부가 어떻게 위원 의견을 정책에 반영했는지 알 수 없다. 서면으로 심의할 경우 회의록도 따로 남지 않는다. 국민의 삶에 직결되는 부동산정책 결정 과정이 ‘깜깜이’로 진행된 셈이다.

국토부 스스로가 주정심의 위상을 허무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국토부는 코로나19 여파로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유예기간을 최근 3개월 더 연장하면서 별도로 주정심 심의를 거치지 않았다. 당초 분양가상한제 시행과 유예 결정은 주정심 심의를 거쳐 의결됐던 사안이다. 한 정부 핵심 관계자는 “주정심에서 심의 의결했던 정책은 개정할 때도 주정심 판단을 거쳐야 한다. 서면으로라도 주정심을 개최해 올바른 절차를 밟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종의 정부 월권행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국토부는 “분양가상한제 유예기간 연장 여부는 주정심 심의 대상이 아니다”는 입장 외엔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국민일보는 그동안 주정심 회의에서 안건별로 제출된 위원들의 주요 의견과 의견 제출 건수 등을 공개해 달라고 했지만 국토부는 모두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국토부는 “주정심 회의 내용은 부동산정책 및 제도와 관련된 사항이다.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하고, 정보공개로 인한 부동산 투기, 매점매석으로 국민 주거안정에 불안을 야기할 수 있어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세종=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