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사건’을 세상에 처음 알린 대학생 기자단이 국민일보(3월 28일자 1, 5면)에 상세한 후일담을 털어놓았다. 두 명의 대학생으로 구성된 ‘추적단 불꽃’은 지난해 7월 미성년자가 포함된 거대한 성범죄 생태계를 발견했다. n번방 존재를 폭로한 이들은 이후 국민일보 특별취재팀과 함께 n번방에 잠입했다. 증거가 실시간 사라지는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의 특성상 즉각 자료를 채증하고 경찰에 신고해 수사를 촉구했다. 이들은 “국민일보 기사 덕분에 이제라도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추적단 불꽃과 국민일보 특별취재팀이 좌담회에서 밝힌 취재 과정은 가슴이 아릴 정도로 충격적이다. 이들은 자주 울먹였다. 유치원생처럼 보이는 아이의 성희롱 사진을 본 날은 충격에 잠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 채팅방 운영자도 나쁘지만 관전자 역시 몹쓸 가해자들이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이들이 분노한 것은 성착취 방지 법안의 미비와 사법부의 관대한 양형 문제다. n번방의 노예 만들기 수법은 최근 몇 년 사이에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1995년 ‘소라넷’이후 정부는 수십 년간 음란물과의 전쟁을 벌였지만 정작 범죄자들은 큰 처벌을 받지 않았다. 현행법상 미성년자 성착취물을 소지한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지만, 실형을 선고받는 사례는 거의 없었다. 사법부가 성범죄자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피해자들에게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 심각성을 알고 판단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채팅방 관전 자체는 큰 문제 아니라는 사회적 성인지 감수성 부재가 오늘날의 n번방과 박사방을 만들었다.
n번방 관련 사건을 맡은 오덕식 판사의 자격을 박탈하자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40만명 가까운 동의를 받은 것은 결코 허투루 봐선 안 된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깊은 불신을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오 판사는 고 구하라씨와 고 장자연씨 성범죄 판결에서 가해자에게 솜방망이 판결을 내려 공분을 일으켰다. 이제는 사법부가 나서서 국민의 목소리에 답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은 29일 성착취물이 유통되는 채팅방에 입장만 해도 처벌하고, 가담자 형량을 최고 무기징역까지 가능케 한 정보통신망법 및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의원 한 명의 개정안 발의로 그쳐서는 안 될 일이다. 국회는 이 법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 정부 역시 가해자들이 응당한 죗값을 치르게 하고, 큰 상처를 입은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
[사설] n번방 추적단 눈물과 호소… 사법부·국회·정부 답해야
입력 2020-03-30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