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오페라하우스로 꼽히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이하 MET)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극장을 폐쇄하는 한편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단원, 무대 스태프 전원을 일시 해고(lay off)하기로 했다. 미국 내 다른 오페라하우스와 오케스트라 역시 MET와 비슷한 방침을 결정하면서 기업 및 개인의 후원에 의지해온 미국 클래식 음악계의 타격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 19일 AP통신 등은 MET가 오는 5월 9일까지 2019-2020 시즌의 남은 공연을 모두 취소하면서 오케스트라와 코러스 단원, 무대 스태프 전원을 일시 해고하고 이달까지만 임금을 지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MET는 매 시즌 예산 3억 달러(약 3600억원), 공연횟수 250회 안팎에 이르는 미국 클래식계 최대 단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뉴욕에서 급속히 확산되면서 지난 12일 뉴욕주의 500명 이상의 모임 금지 조치에 따라 아예 극장 문을 닫게 됐다.
MET의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단원과 스태프 일시 해고는 건강보험이 유지된다는 점에서 한국의 무급휴직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다. 다만 고용 유연성이 높은 미국에서 경기 악화가 지속될 경우 복직이 안될 수도 있다. 유럽 오페라하우스나 오케스트라가 국가나 주의 공적 지원에 크게 기대는 것과 달리 미국에서는 도시 등 지자체의 지원도 있지만 민간단체 및 개인의 후원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MET는 지난 2월 2020-2021 시즌 프로그램을 발표했지만 현재로서는 제대로 시즌이 운영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피터 겔브 메트 총감독은 무기한 무급으로 일하기로 했으며 임직원들은 직급에 따라 10~50% 삭감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티켓을 예약했던 관객들에게 환불 대신 후원을 요청했다.
단원과 스태프 해고는 MET만의 문제가 아니다. 워싱턴의 케네디센터 상주 단체인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도 4월 3일부터 극장 재개관까지 단원들에게 급여가 지급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극장이 계속 폐쇄되면 건강보험도 5월 이후 중단될 예정이다.
캔사스 시티 심포니의 경우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남은 시즌 급여를 모두 받기로 했다. 또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시카고 리릭오페라, 애틀랜타 오페라 등 미국의 주요 단체들 역시 삭감됐어도 남은 시즌 급여를 지급받는다. 하지만 다음 시즌은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미국 클래식계가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도 해고와 임금 삭감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용숙 오페라평론가는 “오페라나 클래식 음악을 향유하는 인구가 줄어들고 있고, 경제 불황으로 인한 기업 및 개인의 후원이 줄어드는 추세”라며 “온라인 스트리밍 사업 등 다양한 수익 모델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 지원에 의존해온 유럽과 한국의 클래식계도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 될 경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