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짜기의 가난한 농부였던 부모님은 여덟이나 되는 자식들 공부를 위해 춘천으로 이사했다. 아버지는 막노동을 했고 어머니는 손수레를 끌고 다니면서 채소와 생선을 팔며 고생했지만 툭하면 살림살이를 부수며 전쟁 같은 싸움을 했다. 아버지의 폭력이 두려웠던 나는 하나님을 찾아 가까운 교회에 나가며 간절히 기도했다. 나와 특별히 친했던 바로 위 넷째 언니가 영어교사로 발령받아 좋아했지만 만성신부전증으로 점점 말라가다가 쓰러졌다. 생명이 위험하다는 말에 어머니가 신장을 기증해 수술이 잘 끝났다. 그런데 예뻤던 언니는 약 부작용으로 몸이 원숭이처럼 털로 뒤덮이며 풍선처럼 부풀었다. 가족들이 놀랄 정도로 흉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왔고 치료와 약값 때문에 언니는 급하게 결혼했다.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의 컴컴한 판잣집에서 살았던 언니는 큰 아이를 낳고 2년 후 둘째를 낳은 후 더 이상 힘든 삶을 견딜 수 없어 이혼했다. 여름에도 두꺼운 점퍼를 입어야 하는 병든 몸으로 두 아이를 기르면서도 언니는 가족들과 이웃을 먼저 생각했고, 일하고 지쳐 들어온 나를 위해 늘 맛있는 저녁도 차려주었다. 그러나 이식받은 신장마저 망가진 언니는 결국 쓰러져 투석을 하면서도 기초수급자로 받은 쌀을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같은 병실의 입원 환자분들을 온 몸을 바쳐 돌보며 열심히 전도했다.
언니의 평생 기도 제목은 가정복음화였다. 눈물로 14년을 기도하며 금요일마다 부모님을 찾아가 예배를 드려 30년간 주먹만 믿고 살던 아버지가 예수님을 영접했다. 그러던 언니가 어느 날 뇌출혈로 쓰러진 후 결국 천국으로 갔다. 조카 둘을 책임지겠다고 생각했던 나는 장례식 후 바로 조카들을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러나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6학년인 조카 둘과 4학년, 네 살인 우리 아이 둘까지 4명을 기르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아이들에게 늘 상처만 받았다. 매일같이 터지는 문제를 보며 ‘왜 키운다고 했지? 앞으로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하지?’ 염려와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어느 날 간절히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경자야! 너의 주인이 누구지?” 물으셨다. 아무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순간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는 말씀이 떠오르며 ‘전능자가 이 땅에 오셨다 가셨는데 무엇이 문제고, 왜 염려하냐’고 하시던 목사님 말씀이 내 마음을 강타했다. ‘아! 다 이루어 놓으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않고 내 힘으로 살았구나! 예수님을 믿지 않은 이 죄가 나와 아이들을 다 죽일 수 있겠구나!’ 정신이 번쩍 들며 통곡이 나왔다. “하나님, 회개합니다. 제가 예수님을 죽인 죄인입니다.” 울부짖으며 회개하고 예수님을 내 마음의 주인으로 영접했다.
언니가 천국에 간 지 9년이 지났다. 그때는 정말 몰랐다. 지나고 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기적이었고, 하나님의 섬세하신 인도하심이었다. 그리고 복음으로 말미암은 공동체가 있었기에 아이들이 주 안에서 잘 자라주었다. 아버지도 예수님을 영접하신 후 가족들과 마음을 함께하는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생각할수록 너무 감사하다. 부활의 증인으로 살다가 순교한 믿음의 선진들처럼 4명의 아이들이 멋진 사명자로 우뚝 세워지기를 오늘도 기도하며 오직 주와 복음을 위해 달려간다.
최경자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