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각국 지도자들의 리더십을 시험대에 올려놨다. 정확한 상황 인식과 현실적인 해법 제시, 대국민 소통 능력에 따라 평가는 엇갈린다. 리더십은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 3인의 코로나 대응 중간성적을 점검해봤다.
‘전시 대통령’ 자처한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은 요즘 백악관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TF)의 브리핑 때마다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를 ‘전시(wartime) 대통령’이라 칭했던 지난 18일(현지시간) 브리핑은 낮 12시6분 시작해 한 시간가량 진행됐는데, 그는 TF 총책임자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옆에 세워놓고 모두발언과 질의응답을 거의 혼자 다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가 확산 중이던 이달 초까지만 해도 “코로나는 곧 사라질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공식 선언한 지난 11일 밤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며 총력 대응으로 방향을 틀었다. 당시 미국 내 확진자는 1000여명 수준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13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고, 16일 취임 후 처음으로 미국의 경기침체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후 자국민과 외국인에 대한 출입국 통제 및 국경 봉쇄, 미국 내 3개 ‘핫스폿’(뉴욕·워싱턴·캘리포니아주)에 대한 연방정부의 지원, 수조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행보를 놓고 CNN방송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위기라는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해 나라를 이끌고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대통령의 능력에 의심을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행정부의 잘못된 신호로 미국인들이 보건 위기에 대응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즉흥적 리더십은 국가적 위기 사태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데이터보다 직관에 의존하고, 비판 여론에 개의치 않으며, 난관이 닥치면 남 탓하는 행동들이 초기 대응 실책을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혐오를 부추긴다는 지적에도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부르다가 돌연 태도를 바꿔 “바이러스 확산은 어떤 식으로든 그들(아시아계 미국인) 잘못이 아니다. 우리는 함께 승리할 것”이라고도 했다. 미 언론들은 이처럼 냉온탕을 오가는 대통령의 말이 국민 불안을 키운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사태는 오는 11월 미 대선 판도를 가를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미국 내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유세가 어려워지자 백악관 브리핑룸을 유세장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통상 이런 이슈는 여당에 불리하지만 수조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분위기 반전이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미 대선에서 투표율이 떨어지면 대부분 공화당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바이러스 수출국’에서 전세 역전 시진핑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자국 내 코로나19 사태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자 대외적으로 리더십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해 말 후베이성 우한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급속히 번지면서 ‘바이러스 수출국’이란 오명을 뒤집어썼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시 주석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나라 정상들에게 위로 전문을 보내고 지원을 약속하는 구원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시 주석은 코로나19 초기 국면에서 부실 대응은 물론 정보까지 통제해 궁지에 몰렸었다. 코로나19의 존재를 처음 알렸다가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공안 조사를 받고 끝내 숨진 의사 리원량 사건이 상징적이다. 중국이 코로나19 발병 사실을 은폐하는 바람에 국제사회의 대응이 늦어졌다는 비판도 받았다.
시 주석은 그러나 바이러스 확산 국면에서는 도시 봉쇄, 이동금지 등 강력한 방역 조치를 취해 확진자 증가세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이런 일사불란한 대응은 공산당 일당체제이기에 가능했다. 중국 당국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중국은 코로나19 사태가 종식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보고 그간 취했던 제한 조치들을 하나둘 풀고 있다. 더 나아가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시작됐다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면서 바이러스 발원 책임을 미국에 돌리는 여론전도 펴고 있다.
커트 캠밸 전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최근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에서 “흔들리는 미국이 만들어낸 공간을 중국이 빠르고 능숙하게 활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부실 대응 비판에 정치 일정도 꼬인 아베
아베 일본 총리 역시 코로나19 부실 대응으로 궁지에 몰렸다. 아베 총리는 일본에서 감염자가 나온 뒤 한 달이 지나도록 사태를 방관했고 지난달 말 전국 초·중·고교 임시휴교령을 독단적으로 발표했다. 일본 언론들은 국민 생활에 미칠 파장, 구체적인 후속 대책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아베 총리의 돌발 결정이었다고 비판했다.
일본 정부가 지난 5일 감행한 한국인 입국 제한 조치는 아베 총리 스스로 ‘정치적 판단’이었음을 인정했다. 전 세계적인 감염병 확산에 대응하면서 국내 정치를 의식한 것이다.
무엇보다 아베 총리가 경기 부흥 기회로 삼으려던 7월 도쿄올림픽은 결국 1년 정도 미뤄졌다. 올림픽 취소라는 최악의 사태는 피했지만 세계적 이벤트인 올림픽 특수에 맞춰 짜놓았던 정치 일정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올 하반기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해 정국 주도권을 잡고, ‘아베노믹스’ 성과도 극대화하는 구상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다만 올림픽이 연기됐어도 아베 총리 임기 내에 열리는 만큼 정치적 유불리를 따기지엔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아베 총리의 자민당 총재 임기는 내년 9월까지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