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운영자 ‘와치맨’ 전모(38·회사원)씨에 최근 내려진 검찰의 ‘솜방망이 구형’은 우리 사회의 사법기관들이 아동·청소년 음란물 유포 같은 사이버 성범죄에 대해 얼마나 안일한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전씨가 2018년 동종 범죄로 기소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전과자였고, 범행 당시에도 집행유예 기간이 끝나지 않아 반드시 엄중한 처벌이 필요했음에도 검찰은 소극적 사법권만 행사한 셈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전씨를 n번방 관련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3년6개월만 구형했다가, 최근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씨가 구속되며 사회적 파장이 커지자 허겁지겁 보강수사에 착수했다.
불법음란물 공유 단체 텔레그램 대화방 ‘n번방’ 창시자로 알려진 ‘갓갓’으로부터 n번방을 넘겨받아 운영해온 전씨는 2018년 6월 대구지법에서 음란물 유포 혐의 등으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전씨는 2016년 8월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여성의 하반신이 노출된 사진을 ‘노예사육소’란 제목으로 게시했다. 이 사진을 시작으로 2017년 5월 18일까지 그가 올린 불법촬영물 수는 167개에 이른다.
전씨는 IP 카메라 관리자 웹페이지에 78회 무단 침입한 혐의를 함께 받았다. IP 카메라를 통해 남의 사생활을 몰래 들여다보거나 불법 녹화하려던 의도였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법원은 범죄전력이 없다는 점을 참작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전씨는 항소하지 않았고 2018년 7월 5일 형이 확정됐다.
집행유예 기간 전씨의 범죄는 되레 대담해졌다. 지난해 4월 해외서버 호스팅서비스를 이용해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는 여성을 불법 촬영한 영상 등을 올리는 음란물사이트를 만들었다. 그는 이용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영상물의 경우 피해여성 신상을 추적해 게시하면서 이목을 끌었다. 또 불법 촬영물 게시로 경찰조사를 받을 경우 대응법을 소개해 접속자의 유입을 늘렸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텔레그램 대화방 ‘고담방’ 가입자가 늘자 이들에게 음란영상을 모네로나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를 받고 팔아 수익을 올렸다.
지난달에는 n번방 불법음란물 유포 정황까지 함께 드러나 추가 기소됐다. 지난해 4월 고담방에서 다른 음란물 공유 대화방 4곳의 링크를 올린 혐의다. 해당 링크를 통해 1만건이 넘는 음란물이 공공연히 전시됐다. 아동이나 청소년의 나체사진과 동영상도 107건이나 됐다.
검찰은 지난 19일 이 사건 결심공판에서 징역 3년6개월만을 구형했다. ‘박사방’ 등 n번방과 전씨 사이 관련성이 확인되지 않은 데다, 전씨가 다른 대화방의 링크를 올렸을 뿐 직접 음란물 제작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솜방망이 처벌’ 비난이 쏟아지자 수원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전부장검사 현민)는 허둥지둥 추가수사와 변론 재개를 신청했다. 검찰 관계자는 “추가 조사를 통해 죄질에 부합하는 중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수원=강희청 기자 kanghc@kmib.co.kr